펜스 너머를 기웃거리던 '외노자'의 주말
독일의 월급쟁이들은 이 나라 최고의 ‘세금 공신’들이다.
월급봉투를 열기도 전에 절반은 국가가 가져가고,
남은 절반의 태반은 다시 월세라는 이름으로 집주인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간다.
독일 직장 생활 20년 만에 마주한 진실은 서글펐다.
성실함만으로는 평생 내 삶의 주인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
그 깨달음이 나를 길 위로 밀어냈다.
주말이면 화려한 쇼핑몰 대신 먼지 날리는 공사 현장의 펜스를 기웃거리는 것,
그것이 유학생 출신 '외노자'였던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가장 절박한 생존 전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한 장의 광고판과 마주쳤다
공원을 산책하다 우연히 발견한 신축 기숙사 쇼룸.
인터넷에는 없는, 오직 발로 뛰는 자에게만 허락된 '날것'의 정보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쇼룸의 문을 열었을 때, 나는 직감했다.
발코니 너머로 손에 잡힐 듯 푸른 공원이 일렁였다.
그 길 위로 미래의 슈바이처를 꿈꾸는 의대생들이 조깅을 하고,
대학병원 환자들이 생의 의지를 다지며 느릿하게 걷고 있었다.
괴테 의대와 대학병원이 지척인 곳.
누군가의 간절한 '살고 싶다'는 의지와 '살리고 싶다'는 열망이 교차하는 정점이었다.
20㎡ 남짓한 작은 원룸. 그 안에는 나만의 욕실과 아담한 부엌,
그리고 햇살을 가득 머금은 발코니가 있었다.
나는 홀린 듯 중얼거렸다.
“이곳이라면, 내가 살고 싶다. 무조건 된다.”
그건 20년 가까이 독일 원룸 생태계를 온몸으로 통과해 온 베테랑 임차인의 본능이었다.
공동 화장실을 쓰며 까치발로 복도를 걷던 그 서러운 기억들이,
이제는 누구보다 날카롭게 '사람의 마음이 머물 공간'을 읽어내는 안목이 되어 있었다.
나의 결핍이 비로소 최고의 무기가 된 순간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전국에서 모여든 엘리트 의대생들로 입주 경쟁은 늘 뜨거웠다.
그 건물엔 묘한 생명력이 흘렀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두 학생이 어색한 미소를 나누다 단짝이 되고,
지하 쉼터의 기타 선율이 밤공기를 타고 흐르는 곳.
무엇보다 자식에게만큼은 가장 고운 길만 깔아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국경을 초월했다.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위해서라면 부모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그들이 지불한 것은 임대료가 아니라, 자녀를 향한 '안심'이었을 것이다.
공실률 0%.
절박했던 월급쟁이의 안목이 빚어낸 생애 첫 번째 성적표였다.
승리의 전율이 가시기도 전,
완벽하게 준비된 이 방의 문을 두드린 첫 번째 주인공이 나타났다.
뜻밖에도 그는,
낯선 땅 독일에 이제 갓 도착한 한국인 음대생이었다.
스무 살, 까치발로 수녀원 복도를 걷던 그때의 나를 꼭 닮은 아이였다.
- 다음 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