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맛이 짭짤하게 나는
"조금만 기다려 친구들 곧 갈거 같아"
...
"근처에 오면 연락해"
...
"어딘데?"
"싫어. 내가 갈거니까"
A와 술을 들이키기 전, 가장 먼저 한 일은 숙소를 잡는 일이었다. 물론 그 애의 숙소를.
A는 휴가도 즐길 겸 나를 보러 양양에 온 즉흥의 여행자였고, 나는 삼 년째 여름의 주말만 되면 양양을 찾는 철저한 계획자였다. 정 잘 곳이 없으면 뒷 자석도 없는 차에서 자겠다는 190의 어른에게 몇 가지 조건들을 갖춘 숙소를 잡아주고서야 나는 핸드폰을 내려 놓고 해변가의 포차에 닿을 수 있었다.
끈적한 간이 식탁에 앉아 일회용 종이컵에 소맥을 휘휘 말아 마시면서, 처음 만난 남녀의 어색함도 조금씩 녹았다. 그리고 술이 조금 되었다 생각도 하기 전에 해가 먼저 져 주었다. 그 즈음의 인구는 창궐한 바이러스가 무색하게도, 상기된 젊은이들과 번쩍이는 네온사인으로 뉴스를 타고 있었다. 방금 만난 남녀는 저런 번잡함은 아무래도 싫다하며, 어둑하다 못해 휘영청 보름달이 뜬 바다 앞에 돗자리를 폈다. A는 물놀이를 싫어한다 했지만, 나는 남자 말을 우습게 들었다. 비키니에 티셔츠를 둘러맨채로 물에 젖은 나는 A를 바다로 끌어들였고, 파도 소리와 달그림자 말고는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둘의 몸은 쉽게 닿았다.
짭짤하게 젖어버린 옷을 갈아입고 보송해진 상태로, 물놀이 후 꼭 먹어야 한다던 육개장은 다 불어터트렸다. 자고가라는 말에도 내일 아침 9시에 레벨업 강습을 예약해놓은 나는 새벽 3시에 굳이 방을 나섰고. 걸어서 10분이면 닿을 곳을 A도 굳이 차로 배웅해 주겠다 함께 나섰다. 헤어지기 아쉬워 돌자던 한 바퀴는 마을을 벗어나 도로로 향했다.
"내가 해방감을 느끼게 해줄게"
그 말을 비웃기도 전에, 젖혀지는 썬루프를 타고 하늘의 별과 새벽 바닷가의 차가운 바람이 쏟아졌다. 텅 빈 도로의 속도감과 내 두 손에 담긴 큰 손 때문에, 별이 곧 내게 떨어져 닿을 것만 같았다. A는 저렇게 실없는 소리를 하고 민망해하는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기어코 내 게스트하우스 침대로 돌아간 나는 모기의 습격에 한 숨도 돌리지 못하고 양양의 마지막 밤을 지샜다.
나는 친구와의 점심 약속을 서울에서로 미뤘고, A는 내 강습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날따라 아침의 파도는 준수했으며, 레벨업에 대한 나의 굳은 의지와, 오는 파도에는 꼭 달라 붙겠다는 체력에 선생님도 흡족해했다. 밥이나 먹고 헤어지자는 이야기는 결국 내 버스티켓을 취소했고, 나는 그 큰 손을 붙잡고 여름날 휴게소를 거치고, 꽉막힌 도로를 지나, 우리 집까지 오게 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던 우리 집은 남자가 닿을 수 없는 곳이었기에, 그 날은 거기서 작별한 것이 우리의 관계를 더 연애같은 것으로 이끌었던 듯하다. 양양에서 만난 그 애를 내가 나고 자란 동네로 데리고 왔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