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수업을 작년 12월 중순 그만두었다. 마지막 날의 화실 공간은 여전히 같았다. 한 벽면에 가득한 연예인의 소묘 얼굴도, 한 측면 곳곳에 놓인 수강생들의 대부분의 그림도 자리에 있다.
마음을 먹은 것은 2주 전 수업에서 새 그림을 연습할 때였다. 최근 두 달간은 수업시간 안에 느슨하게 그림하나를 완성하는 연습을 시도해 왔다. 그날 연습하는 그림은 피아노를 치는 누군가의 뒷모습이었는데 밝음과 어둠, 색면을 나누지 못해 한참을 머뭇거렸다. 1시간 여가 지난 뒤에도 앉아있는 여성의 자세와 색조는 여전히 뒤틀려 있었다. 오후 햇빛에도 그림은 뭉개져 질퍽거렸다. 제자리걸음이다. 유튜브의 강의들을 기억에 잔뜩 담아왔지만 마음처럼 쉽게 쳐나가지 못했다.
문득 무엇을 그리러 여기 왔었더라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배운다는 것 자체는 아니었다. 내 안의 것을 밖으로 꺼내어 마주하는 기대였다. 하루를 써낸 글에서 시간과 사건을 왜곡한 자신을 살피 듯, 그림에서는 내가 가진 정서를 꺼내어 마주하는 기대를 가졌었다. 하지만 밖으로 꺼내어내는 것에 성공한 기억은 없었다. 내가 가진 정서를 표현하고 싶었지만 기술적인 이야기로 자주 연결되었다. 마음 안의 광경은 각자가 다르기에 그 안의 감정을 흘려보내는 이야기는 잘 표현해 내는 것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제자리걸음에 권태로웠다.
연말의 회사생활도 비슷했다. 성취감 없이 마무리되었다. 연말이라는 핑계로 12월에는 머릿속의 손을 놓았다. 유달리 업계의 화제가 많은 시기였지만 일상적으로 확인하는 기사나 뉴스레터, 업무와 관련된 글도 미뤄두고 쌓아만 두었다. 새해의 연간 계획도 세우지 않은지 오래다. 5년 전쯤부터 그만두었다. 지키는 것보다 세우는 것에 흥미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 뒤로 오랜 의식을 멈추었다. 하지만 새해는 계획이 없어도 찾아온다.
1월이 되며 회사는 변화를 맞이했다. 내가 속한 부서도 몇 년 만에 직책자가 교체되며 개편을 논의 중이다. 과거의 중요시되었던 것들이 순식간에 지워졌다. 그 위에 새로 온 누군가는 자신이 가장 익숙한 구조를 그려 넣는다. 일종의 화풍이다. 때로 내용보다 화풍이 중요하다. 신임 인사에는 신뢰를 얻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허락해 주는 것이 새로운 화풍이다. 기존의 조직은 새로운 작법에 신선함을 느끼고 몇 달간 의미를 헤아린다. 그 사이 여러 기대감과 패배감이 표류한다. 그리고 둘 모두 결국 적절한 수준에서 잦아든다.
과거에는 이러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었다. 때로 내가 다치는 변화로 혹은 나아지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비슷한 화풍을 가진 사람들, 시간 위의 같은 패턴을 몇 번 겪다 보니 그저 잦아듦을 기다리며 멀찍이 서서 바라본다. 큰 변화였음에도 작년의 권태가 1월까지 이어졌다.
1월이 되며 몇몇 학원의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정서를 회화로 구성하는 접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보통 순서는 동일하다. 온라인으로 강의를 신청하고, 표현하고 싶은 형태의 그림을 전하고, 표현에 참고할 정보를 전달받는다. 대부분은 표현의 기술적인 이야기였다. 그림 그린 사람의 심상과 맥락에 대한 이야기는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았다. 매 수업마다 그림은 원하는 수준으로 완성되었지만 정서가 담겨있는지는 석연찮았다.
설 직전에는 몇 가지 화구를 주문했다. 붓을 주문하고 캔버스를 사고 골라둔 사진을 출력했다. 머뭇거림을 집중해서 마주해보고 싶었다. 햇빛 드는 도시 빌딩 사이의 파라솔 있는 벤치였는데 똑같은 머뭇거림이 나타났다. 자신 있고 느슨하게 그려내려 노력했지만 그림자 경계가 일렁여 파라솔 밝음의 경계를 그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 수업을 들었지만 12월 학원을 그만두던 날과 같았다. 하지만 달리 무엇을 할까 싶어 그 뒤로도 2시간이 걸려 그림은 완성했다.
누군가 권태는 계속될 것 같지만 끝이 있다고 했다. 그 뒤의 시간은 숯과 같다고 했다. 불도 아니고 완전히 꺼진 것도 아니라고. 회사 생활의 남은 시간이 지내온 시간보다 적게 된 시점은 많은 것을 달라지게 한다. 과거와 동일한 노력은 끝에서는 쓸모없을 것이 된다는 생각과 지속되지 않을 사회적 관계에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어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딱히 무엇을 할 것은 없어 오늘 하루를 완성한다.
연말부터 시작된 권태로운 새해다.
마른 것을 긁어내는 봄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