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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365/24 프린트

by 프랭크

산책길 모퉁이에는 무인 프린트점이 있다. 유리창 너머 푸른 형광등은 어두운 밤거리에 하얀 그림자를 드리운다. 창 너머에는 먼지 없는 기계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오늘은 한 남녀가 안에 서 있다. 몸짓이나 손짓을 보니 가까운 사이 같다. 후드티를 입은 남자의 등을 여자가 두드리며 크게 웃는다. 그들의 그림자도 창에서 밝게 흔들린다. 아마 준비할 것이 있어 들른 듯하다. 둘은 무엇인가 쓰인 종이를 보며 다시 웃는다.


365일 24시간.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들은 그 시간을 사랑할까.

그때까지의 시간 사이에 서로만을 마주 볼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연인은 하루 속에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아침을 준비할 채비를 한다.

가벼운 마음과 무거운 마음과 분한 마음을 몇 차례 벽돌처럼 들었다 내려놓는 하루는 반복된다.


어느새 하루는 시작하고, 어느새 하루는 끝나있다.

그 사이 서로는 하루 내내 잊고 있을 것이다.


365일 24시간.


그중 10분의 1은 서로를 생각할까

그중 하루의 1시간은 서로를 생각할까


아마도 관계의 끈은 시간의 길이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끈은 매어두면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365일 24시간.


멀리서 푸르스름한 불빛은 가게 안에서는 항상 무색이다.

사실 지금 가게 안의 공기와 대화는 자못 다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중 누군가는 끝을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누군가는 애써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마음을 알아채고 있을지도 모른다.


365일 24시간.


내 하루하루를 내 감정의 틀로 읽어내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어제와 변함없이 같았다.

어제는 그제와 변함없이 같았다.


하지만 산책길, 가까이서 더듬어 보는 하루는 어제와 다른 부분을 긁혀 있다.


오늘 하루는 나를 기억할까.

나는 오늘을 기억할까.


1년 중 작은 시간만큼은 서로를 기억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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