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반가웠다.
지하철을 내려 집으로 올라가는 언덕 초입에는 전봇대가 있다. 아침 출근길에는 눈에 들지 않는 풍경이지만, 퇴근길에는 노랗게 어둑한 하늘아래 흩어진 선들을 잠시 멈춰 바라본다. 알 수 없는 하지만 익숙한 묘한 감정이 든다.
그것이 침묵이었구나 싶었다. 감정의 단어를 찾은 기분이었다. 빠르게 노트에 문장을 옮겨 적었다. 느릿한 주말 카페에서 조용한 기쁨을 만끽했다.
내 직업은 추상적인 용어를 피해야 하는 공간이다. 문장에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할 단어는 '빽빽하게 얽힌 전선'과 '고압의 전류'이다. 사고 가능성과 규정위반을 판단하여 다음 행동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장은 왜 이 구역이 관리되지 않았는지의 발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재발되는 문제를 방지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해결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는 ‘얽힌 선들이 숨긴 채 침묵'이 가장 먼저 읽힌다. 다섯 차례 반복해 읽어보지만 마찬가지다. 내게는 풍경의 심상이 먼저 읽힌다. 늘 회사의 언어는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글을 쓰는 기분이다.
감정이 먼저 읽히는 것은 좋은 일일까?
문장의 감정을 읽을 수 있음은 많은 소음과 자극아래 지내게 됨을 의미한다. 다독여 잠재우려면 많은 노력이 든다. 그 사이 현실의 문장도 반드시 다뤄야 한다. 해야 할 일을 알려주는 단어들을 주워 담아 역할을 마쳐야 한다. 하루는 설겁게 겨우 기워진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남은 실타래를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오늘 회의실에서의 미묘한 공기와 어긋나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떠오른다. 언어가 아닌 느낌도 기억에는 담긴다. 그리고 불쑥 찾아온다. 괜한 의미를 부여하여 과도한 고민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별문제 없이 해결되는 문제들이다. 미묘한 관계는 미묘하게 사라진다.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덕분에 내 삶은 풍부해왔다. 문장 속에 보이지 않는 것을 즐기는 시간. 간접적인 경험으로 언젠가 겪을 나의 후회와 타인의 고민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읽어내는 주말의 시간에서 한 주가 회복된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에도 언어 없는 것은 잔뜩 흩뿌려져 있다.
정서를 포착해 보여지는 것, 만져지는 것, 읽혀지는 것으로 흔적을 남기는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감사하다. 덕분에 내 일상이 온기를 띤다. 따분한 하루가 녹여진다. 회사의 언어에 어색한 편이 내게는 더 맞다고 생각한다.
정적이 어둠을 채운다. 어둠이 정적을 채운다. 그리고 내 어둠에는 온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