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펀한 욕 한 바가지 싸질러 놓은
마을 끝집 할미의 오물 덩이가
차라리 정겨워
허연 파도 속살 깊이
제 몸 길게 쑤셔 박아 놓은
돌땡이 커다란 섬
날 밝은 허연 대낮
연붉은 제 속살 헤프게 드러낸
키 큰 해송 같고,
길 잃은 밤바다에
비로드 포말 카펫 뽀얗게 깔아
파돗길 환하게 밝혀 주는
고고한 여인네의 가로등 같은
남해 물길 너머 먼 섬
칠흑의 삶의 모서리 끝에
혼자 숨어든 어느 날,
저 혼자 뭍에 오른 그 섬은
도시의 바다 오아시스가 된다
저 글과 그곳을 찾은 것은 1990년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어떤 경위로 손에 쥐게 된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펼쳐 든 지도 위에서 '욕지도'라 이름 붙은 작은 점 같은 영역을 발견한 것이. 그 길로 바로 등 가방 하나 챙겨 메고, 그 섬에 있을 것이 틀림없는 ‘욕쟁이 할멈’을 찾아 서식지를 벗어났다. 종일 달린 시외버스에서 내려 충무를 거쳐 뱃길로 들어간 크지 않은 남해의 그 섬은, 뭍사람의 흔적이라곤 뚝 끊어진 한적한 어촌 마을이었다.
어렵사리 물어 물어 찾은 낡은 민박집의 작은 숨구멍 겨우 뚫린 퀴퀴한 골방에 가방을 던지고, 사방이 막힌 어두운 구석에 베개 받쳐 몸을 길게 누우니, 섬의 바닷바람에 묻어나는 비릿한 생선 내음이 몸뚱이를 서서히 염장시키고 있었다. 그렇게 꿈 없는 선 잠에 몸을 맡긴 시간은 뭍의 시간으론 짧았고 방안에 걸린 먼지 낀 둥근 벽시계론 길었던 것 같다.
그냥 묵은 며칠 동안 동네 강아지에게 몇 마디 던진 것 외에는 입 밖으로 아무것도 내뱉을 필요가 없었고, 끝내 찾지 못한 욕쟁이 할미보단 선착장 건너편 2층 해송 다방의 통통한 마담 언니가 태워주는 ‘욕지도식 다방 커피’에 중독되어, 때 낀 창 유리 밖 선착장 위를 낮게 날아다니는 갈매기의 숫자만 하릴없이 세고 있었다. 그 커피가 122였는지 232 또는 223였는지는 다행스럽게도 기억을 잃었다. 분명한 건 무언가 신비한 마법의 가루가 그 배합에 섞였을 거란 추측, 또는 바람뿐이다.
혼자 나선 밤 산책 길에선 검청의 밤바다에 내려앉은 달빛의 일렁임이 마치 커다란 은빛 고운 비단천이 자잘 자잘 농을 걸어오는 듯 반짝였고, 바람 소리조차 으슥한 해송 가지 사이에 둥글게 걸린 달에선 방앗 찢던 토끼가 금방 튀어나와 어두운 숲 속을 몽실몽실한 궁둥이를 통통거리며 하얗게 뛰어다닐 것만 같았다.
기억은 그냥 버려두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그곳에서 지낸 그 며칠의 기억은 별다른 채색 없이 기억의 저장소에 가만히 남겨두어도, 때마다 슬금슬금 제 알아 고개 내밀어 말갛게 내린 아메리카노 커피보다는 걸쭉하게 휘저은 다방커피 한 잔을 그립게 만든다.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오전인지 오후인지, 저녁인지 밤인지, 아무튼 말이 나온 김에 아직 또는 벌써 찌뿌덩해진 몸을 믹스 커피 한 잔으로 깨워야겠다. 지금이 그렇게 할 때라고, 욕지도의 바닷바람에 해송 다방의 짭조름한 커피 향이 코 끝을 살살 간지럽힌다.
아, 혹시 그 통통한 마담 언니의 마법 가루란 게, 바닷바람을 말려 곱게 빻은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