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은 늙은 조랑말 같다
눈곱 낀 큰 눈은 체념에 익숙해 보이고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할 것 같은 다리로
오늘의 끝을 향해 투벅투벅 걸어간다
끝물 같은 검붉은 포도주를
손자국 배어 있는 잔에 채우고
늘어진 눈꺼풀을 껌벅이다가
안개 자욱한 시간의 강가에 선다
제 맘 가는 대로 흐르는 강물에서는
파뿌리를 머리에 쓴 옆집 할미의
주름 진 노랫가락이 꾸물꾸물 흘러나온다
아직 어둠이 내리진 않았지만
시간의 강물은
강가의 풍경 어느 것에도
설핏한 눈길조차 한 번 주지 않고
제 가던 곳만을 향해 흐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