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에 대해 얘기하자면 그의 작품만큼이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의 삶이다. 그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카라바조는 화가로써는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다혈질의 불안정한 성격의 소유자였기에 기존의 사회적 도덕과 질서를 무시하는 일을 저지르기 일쑤였다. 종종 다툼과 시비에 휘말렸던 그는 일곱 번이나 감옥에 투옥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결국에는 살인까지 저질러 사형을 선고받은 채 도피생활을 해야만 했다.
사실 카라바조가 저지른 대부분의 사건들은 그리 심각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의 뛰어난 재능을 아꼈던 영향력 있는 귀족들과 고위 성직자들의 도움으로 사면을 받을 수 있었지만 살인 사건만큼은 그들도 수습하기에 힘들었던 것 같다. 카라바조가 저지를 살인 사건의 경우, 로마의 뒷골목에서 벌어진 '결투'로 인한 것이었기에, 카라바조의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살해한 것은 지금뿐만이 아니라 그당시에도 용서받을 수 없는 중대한 범죄였다. 어쨌든 이 살인 사건은 카라바조의 삶을 송두리째로 뒤흔든 중요한 사건이었기에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에서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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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저지른 후 나폴리로 도주한 카라바조는 자신의 사면을 위해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궁리해 낸다. 몰타기사단의 도움을 받아 로마 교황청의 사면을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몰타로 건너간 그는 <세례자 요한의 순교>를 그린 작품으로 [몰타기사단]의 인정을 받았고, 정식으로 [몰타기사단]의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다른 기사단원과 싸움을 벌여 중상을 입히는 사고를 치게 되었고, 결국에는 몰타 섬을 떠나 [시칠리아]의 도시 [시라쿠사]에 있는 친구의 집으로 도주하지만 [몰타기사단]에게 쫓기는 생활이 이어지고 그들의 습격으로 큰 부상을 입게 되었다.
쫓기는 생활에 지친 카라바조는 그의 사면을 위해 노력하던 교황의 조카에게 바치기 위한 목적으로 <골리앗의 목을 든 다윗>을 그렸고, 이 그림과 함께 배를 타고 로마로 돌아가려 했으나 지방 경비대장에게 체포되는 바람에 주인 없는 그림만이 배를 타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풀려나게 되긴 하지만 결국에는 로마에 가지 못하고 객사하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몇 가지 버전이 전해지고 있다. 카라바조의 도피가 자신에게 내려진 참수형과 자신에게 걸린 현상금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카라바조가 로마로 향했다는 것은, 그가 배에 타기 전에 이미 자신의 사면 사실을 알았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경비대장에게 체포를 당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사면 사실의 통지가 어떤 공식적인 문서를 통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도피 생활 중에도 카라바조는 그를 후원하던 로마의 고위 성직자들과 계속해서 연락을 주고받았기에 아마도 인편이나 누군가의 개인적인 서편을 통해 사면 사실을 인지하였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현상수배범으로써 경비대장에게 붙잡히게 된 카라바조는 자신의 사면 사실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을 것이고, 비록 중범죄자이긴 하지만 유명인사이자 엄청난 거물이었던 카라바조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경비대장은 그의 주장을 확인한 후에 결국에는 카라바조를 풀어주게 되었을 것이다. (카라바조의 마지막 여정과 죽음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에서 다시 다룬다.)
비록 풀려나긴 하였지만 다시 배에 오르진 못하였고 그림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중에 삶을 마감하게 된다. 햇수로는 39년, 그의 나이로는 서른여덟 하고도 열 달이 채 지나지 못하던 때였다.
카라바조 삶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이 대목에 있어서는 비슷하면서도 어긋난 이야기와 기록이 마치 소설이나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이해하기 어려운 삶의 행적 중에서도 이 대목이 가장 극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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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로서의 그는 사물과 사건을 세밀하게 살피고 그것들을 대담하게 표현할 줄 아는 천재적인 예술가였지만, 생활인으로서의 그는 당대를 살아간 여느 인간들처럼, 어쩌면 그들보다 더 겁이 많고, 서툴고 여린 한 인간이었던 것 같다. 그의 작품을 보면 그는 수려한 예술적 언어를 누구보다 자유롭게 구사할 줄 알았던 것이 분명하지만, 삶을 보게 되면 그의 삶의 언어는 빈약하다 못해 투박하고 거칠기 짝이 없어 문명화되지 못한 야생의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그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고 그것을 따르려고는 했지만, 그 소리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는 거의 문맹이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내면은 어릴 적 겪은 트라우마와 정서적 불안정함을 끊임없이 호소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것을 듣고 있는 현실에서의 그는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하는지,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전혀 몰랐기에 그냥 내버려 둔 것 같다. 그렇기에 학자들에 따라서는 "그저 외면 하였다."고 보고 있지만, 어쩌면 그것이 카라바조 나름의 대응 방식이었을 수 있다.
그의 삶을 추적하는 것은 아슬아슬하고 불가사의한 것을 쫓는 것처럼 지극히 매혹적이기도 하다. 그를 아끼는 이로써 너무나도 안타까운 것은, 카라바조는 트라우마의 사슬에 엉켜 고통 속을 살아간 것 같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자신조차 주체할 수 없었던 천재성의 이면이었을 수 있다. 어떤 고통은 악행이나 무례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현시키는 법이다. 불쑥 나타나, 잔뜩 흩어놓고서는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지나간 어느 때의 슬픈 기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