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카라바조의 종교화에 대한 논란에 대해

6. 카라바조의 종교화에 대한 논란에 대해

카라바조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면 어느 누구도, 그가 종교적인 인물이었다거나, 종교인다운 경건한 삶을 살았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살아간 당대 유럽의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역설적이게도 카라바조는 종교인이었고 종교화의 대가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카라바조의 종교화 앞에 서면, 그림을 그릴 때면 분명 카라바조는, 누구보다도 더 신실한 종교인이었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가정을 해보게 된다.


"그러니, 카라바조의 손을 빌어 태어난 종교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신앙심을 고취시키고 탄사를 자아내었을 수밖에."


성스럽고 엄숙해야 할 가톨릭 교회와 고위 성직자들이 카라바조를 후원하였고 앞을 다투다시피 성화의 제작을 의뢰하였다. 그렇게 카라바조가 그린 종교화는 당대의 여러 유명 교회의 제단을 하나씩 장식해 나갔다.


분명 후원자와 의뢰자들은 카라바조의 일상에서의 기이한 행동과 저잣거리에 자자했던 온갖 추문을 알고 있었을 테지만, 그것을 크게 문제 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그 시대가, 예술에 있어서 만큼은 지금보다도 더 큰 포용력을 가졌던 것이라고 볼 수 있겠고, 카라바조가 그림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적인 작가였기에 "그 정도 재능을 가진 천재라면 그런 것쯤은 눈감아 줄 수 있다." 또는 "천재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배타적인 시선으로 그를 받아들였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카라바조의 천재적인 작품이 그들의 눈을 멀게 한 것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기에 그의 천재성은 분명 하늘로부터 부여된 것이라고 여겼을 테니."


하늘은 곧 하느님이기에, 하늘이 부여하였다는 것은, 카라바조의 재능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말이 된다. 따라서 카라바조의 그림을 부인하는 것은, 자칫 하느님의 권능을 부인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수도 있기에, 당대의 어느 누구도 카라바조의 그림에 커다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카라바조가 또다시 말썽을 부렸다는 소식이 들여올 때면, 카라바조가 그린 대형 제단화 앞에 서서 생각했을 것이다.


"저런 천재적인 재능을 부여받은 카라바조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것에는 분명,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뜻이 그 안에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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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종교적인 메시지는 가톨릭 교회와 이와 관련된 여러 단체들과, 고위 성직자 및 부유한 귀족들이 예술작품을 의뢰하고 후원하던 시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카라바조의 작품 대부분이 그들의 후원과 의뢰로 태어난 종교화인 것은, 굳이 두 말할 필요 없이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카라바조가 기존의 종교화에서 그려지던 전통적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파격적이고 개혁적인 이미지를 종교화에 그려 넣었다는 점으로 인해, 그림을 통해 종교적인 혁신을 도모하려고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카라바조가 교회와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의 지속적인 후원과 작품 의뢰를 통해 금전적인 이익과 명성을 얻었으며, 또한 그들이 의뢰한 신화적이고 도덕적인 장면이 연출된 그림을 주로 그렸고, 실제로도 <성 마태> 시리즈에서 알 수 있듯이 의뢰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이미 완성된 작품조차도 다른 버전의 작품으로 다시 그리는 일을 서슴지 않았기에, "카라바조가 종교적인 이미지의 혁신을 도모하려고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


그렇다면 카라바조가 그린 종교화를 어떤 관점으로 감상하는 것이 좋을까. 카라바조는 그림을 보는 이에게 종교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차원의 종교화에 헌신한 화가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카라바조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그가 남긴 작품에 대한 개별적인 분석과 해설 부분에서 심도 있게 다루기로 한다.


예술과 종교에 대한 카라바조의 열정과 헌신은 종교화 속에 자신을 포함시키는 것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즉, 카라바조가 자신의 그림 속에 자신을 그려 넣는 것은, 자기 자신을 예술과 교회에 바치는 그만의 '종교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종교적인 사건을 표현하면서, 자기 자신을 그 사건의 목격자이자 참여자로써 그려 넣음으로써,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에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종교화에 있어 화가가 자신의 자화상을 그림 속에 포함시키는 것은 카라바조 이전에도 있어온 일이다. 이러한 행위는 화가가 "이 위대한 작품을 내가 그렸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즉각적인 상징이자 사인(sign)과도 같은 것이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그린 작품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표현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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