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있는 지금 이곳은
세상보다 한 걸음 높이 솟은 곳이다
살만큼 살아보니 알겠다
책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다는 것을
책을 읽고 있으면
가슴에 들어붙어 있던 허물이 벗겨진다
벗겨진 허물은 흉측하지만
그 속살은 아름답게 빛난다
르느와르 <책 읽는 여인>
The Reader (Young Woman Reading a Book), Pierre-Auguste Renoir, 1876, Musée d'Orsay
책을 읽노라면 마음에 바람이 인다
바람은 살랑살랑 나를 들여다보게 하지만
부끄러움에 행여 얼굴 붉어지게 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고 있으면 알게 된다
인간의 영혼은 본질이 가난하기에
가난밖에 나눌 것이 없다는 것을
벌거벗은 몸뚱이에 빈 정신으로 태어났으니
인간은 가난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창 밖의 햇살을 피하고 싶은 어느 아침,
책을 읽다 보니 알 것 같다
책은 영혼의 가난을 알아차린 이에게 남겨져 있는
하나뿐인 비상구라는 것을
르느와르의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The Reader), Pierre-Auguste Renoir, 1873 - 18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