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간다는 것은 길고도 망연(茫然)한 여행길을 홀로 걸어가는 아득하고도 가마득한 일이다. 그 길을 걸어가다가 만나게 되는 고독은, 손잡을 것이라곤 스쳐가는 바람 줄기뿐인 이방 여행자에게 밀려드는 가없이 먹먹한 외로움 때문이기도 하고, 예정 없이 불쑥 고개를 내미는, 그래서 아련하고 시린 추억의 파편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가 고독한 존재이다. 우리는 고독하기에 인간인 것이다. 인간은 고독을 느낄 때에, 아니러니 하게도, 비로써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때 없이 찾아드는 것이 고독이니, 고독은 가장 오래된 삶의 동무인 것이다.
고독과 여행은, 서로가 다른 것 같은데도 어딘가에서는 닮아 있기도 하다. 고독을 친구 삼고 애인 삼아 떠난 짧은 여정이 여행길 걷기이고 조금 긴 여정이 삶의 길 걷기이다. 하지만 길을 걷다가 보면 짧다거나 길다는 것은 의미를 잃어버리기에 여행길 걷기와 삶의 길 걷기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여행길에선,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독하기 마련이고 고독한 이가 여행길에 오르는 것이기에 고독과 여행을 애써 나누려는 것은 한낱 부질없는 짓일 뿐이다.
고독은 태초부터 인간에게 던져진 문제이다. 어쩌면 인간은 그것이 무엇인지, 받아들인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아무것도 모른 채 덥석 안아버린, 그래서 원죄가 되어버린, 풀 수 있을 것 같아 보이지만 풀기에는 너무 어려운 난제가 고독이다.
고독이란 채점할 이 없고 답 또한 주어지지 않는 문제이니, 누구나 입을 열어 고독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또한 때마다 장소마다 목소리를 바꾸어 가며 자신의 고독에 대해 얘기한다 해도 고독은, 그 누구도, 아무것도 책망하지 않는다.
고독은 중독성 강한 에고이다. 고독한 사람은 자기 최면의 카타르시스에 빠진 사람이다. 고독의 카타르시스를 맛본 사람은, 그 울타리 안에 스스로 들어서길 주저하지 않는다. 고독한 자에게 카타르시스는 메마른 사막을 걸어가다가 만난 초록 물기 촉촉한 오아시스이고 깜깜한 미로 속을 헤매다가 맞이한 환한 빛줄기이다.
앞 뒤 뒤죽박죽 늘어놓은 이 몇 줄의 변명이 하고자 하는 말은 “사람의 인생이 그렇듯이, 고독을 벗 삼아 걸어가는 혼자만의 길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다.”라는 것이다.
길다는 것의 단위는 정해지지 않았으니, 길었다고 말하는 것이 뭣할 수는 있겠지만, 험난했던 여행길을,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헤쳐 온 것 같다.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란 것은 이것저것 쉽지 않은 선택의 연속이었으니, 이미 흔적 없이 증발해버린 그 시간들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면 나의 어리석음만을 드러내게 될 것 같아 볼이 달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