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4년부터 1588년까지, 나이로 보면 대략 14살이 되던 해에서 18살이 되던 해까지(서양의 경우 태어난 날짜를 기준으로 나이를 계산하기 때문에,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나이를 계산하는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약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밀라노의 [시모네 페테르자노 화실]에서 도제로 지내면서 그림을 익힌 카라바조는, 공방을 떠난 1588년부터 1592년까지, 약 4년 동안을 더 밀라노와 그 인근 지역에 머물렀다.
이 시기에 있었던 카라바조의 행적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지만, 이후 로마에서의 행적과 작품, 몇 가지 자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록들과 추측을 토대로 "아마 이러했을 것이다."라고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 [베네치아]와 같은 거점 도시들을 방문하여 당시 활동하던 다른 기성 화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 이탈리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했던 [자연주의 화풍]을 익혔을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화풍을 정립해 나갔을 것이다.
- 로마에서의 초기 생활이 빈궁했다는 점을 기반으로 추측해 보면, 무절제한 생활로 인해 그의 부모가 물려주었던 재산을 대부분 탕진했던 것이다.
- 이 시기에도 이미 폭력이 동반된 분쟁에 휘말렸을 수 있을 것이다.
- 초기 로마에서와 같이 몇몇 화실에 짧게나마 머물면서 그 화실이 의뢰받은 작품의 제작에 간접적으로 참여했을 것이다.
- 다른 기성화가가 의뢰받은 작품의 보조화가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또는 누군가의 소개에 의해 '주문받은 그림' 몇 점을 그렸을 수는 있겠지만, 당시의 카라바조가 이제 갓 도제교육을 마친 십 대 후반 또는 이십 대 초반의 무명 화가에 불과했다는 점과, 1500년대 말의 사회적인 여건을 바탕으로 추측해 보면, 카라바조에게 그림을 주문한 의뢰자라고 해봐야 기껏 '경제적인 면에서 평민이나 다름없는 신분상으로만 귀족'이거나 '살아가는 것에 약간의 여유를 가진 상인' 정도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카라바조에게 의뢰한 그림이라는 게 집의 거실이나 침실의 벽면에 걸어둘만한 '액자에 끼워넣기 위한 그림'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 류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야심에 가득찬 젊은 화가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카라바조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카라바조가 할 줄 알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그림을 그리는 것' 밖에 없었기에, 마치 송충이가 솔잎을 갉아먹으며 살아가듯, 분명 이 시기에도 여러 그림을 그려서 푼돈과 교환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시기에 그려졌을 카라바조의 그림은 현재까지 발견된 것이 없다.
이 시기의 그림이 남겨져 있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추측이 가능하겠지만,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당시 카라바조에게 그림을 주문했을 사람들의 성향과 배경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능하게 된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십 대 후반 또는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무명의 카라바조에게 그림을 주문한 사람들은, 교양과 재력이 있고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 고위 성직자나 경제적으로 윤택한 주류 귀족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젊은 무명의 카라바조에게 그림의 주문한 사람들은, 카라바조가 그린 그림의 내용이나 수준에 대해서는 별 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을 것이고, 단지 액자에 끼워 넣어진 채 그들의 집 벽면에 걸려있는 것만으로 만족했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애초부터 제대로 된 보관을 기대할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카라바조가 이 시기에 그린 작품들은, 소유자가 이사를 해야 하거나 건물을 개축하는 경우와 같이, 그림이 보관되는 환경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경우, 다른 잡동사니들과 함께 헛간이나 창고로 옮겨진 후에 결국에는 버려졌거나, 화재와 같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소실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측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