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는 21세가 되던 1592년에 밀라노를 떠나 [영원의 도시 로마]에 첫발을 디딘다. 비록 어린 시절을 카라바조에서 보내긴 했지만, 밀라노는 그가 태어난 곳이자 그를 카라바조라는 이름의 화가로 키워준 영혼의 고향이다. [시모네 페테르자노 화실]에서 도제 생활을 마친 후, [베네치아]와 같은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몇 군데를 가본 적은 있지만 세상의 중심이라는 로마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기에 떠날 것을 기약하고 온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이곳 로마가 나의 집이고 나의 일터이다."
카라바조가 밀라노를 떠나 로마로 가게 된 것에 대해서는, 밀라노에서 폭행 사건에 연루되었기 때문에 '도피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견해가 있긴 하지만, 당대의 로마가 지금의 뉴욕이나 런던, 파리와 같이 세상의 중심이자 예술과 문화의 메카였다는 점에서는 '예술가로서 성공을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었다는 견해에 힘을 더 실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도피를 위한 것이었건 성공을 위한 것이었건, 실제로는 어떤 사유가 카라바조에게 있었건 간에, 저자의 생각에는, 카라바조가 로마로 향한 것은 이 두 가지 요인이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당시 '밀라노에서 어떤 심각한 분쟁에 연루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평소 꿈에 그리던 로마로 가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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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가 실력 있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로마에서의 성공을 꿈꾸었던 시대였고, 카라바조 또한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로마에서의 성공을 누구보다 더 열망하는 '야망에 찬 젊은 예술가'였기에 결국에는 로마로 가야만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밀라노를 떠나야만 했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얘깃거리가 가미된 것 같긴 하지만 왠지 카라바조라면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은' 견해 또한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로마에서의 활동을 시작한 후에 그가 저지른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사건들을 토대로 생각해 보게 되면 '어떤 류의 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밀라노에서 도피해야만 했을 것'이라는 주장 또한 나름의 설득력을 가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라바조라는 위대한 천재 예술가를 단지 '폭행 사건'에만 연관시켜 로마로 온 것이라고 말하게 되면,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는 큰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비록 다소의 편향이 발생한다고 해도, 그것이 카라바조를 옹호하려는 억측으로 비칠 수 있다 해도, 그를 예술가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려는 시선을 굳이 막아서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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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중반 미국의 재즈 뮤지션들 사이에서는 '뉴욕에서 연주하면 빅애플(Big Apple)에서 연주한 것이고, 뉴욕 이외의 지역에서 연주하면 잔가지(the branches 또는 the sticks)에서 연주한 것'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것은 '뉴욕에서 연주하면 크게 성공한 것이고, 다른 도시에서 연주하면 작게 성공한 것'이라는 얘기를 '애플'과 '잔가지'에 빗대서 한 말이다.
마찬가지로 카라바조가 살아간 1500년대 말과 1500년대 초기의 예술가들에게는 '[영원의 도시 로마]에서 성공해야만 크게 성공한 것이고 다른 도시에서 성공하면 잔가지에서나 성공한 것'에 해당하였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피렌체]와 같은 다른 이탈리아 도시의 [르네상스] 기의 예술 작품들을 떠올리는 이가 있겠지만, 카라바조가 살아간 시기는 이미 [르네상스]만이 아니라 [전성기 르네상스]조차 훨씬 지난 시대였음을 염두에 둔다면, 당시의 예술가들이 가졌던 '로마에서의 성공에 대한 열망'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 [전성기 르네상스](High High Renaissance): 대략 1495년 또는 1500년에서부터, [라파엘](Raphael)이 사망한 해인 1520년 까지를 [전성기 르네상스]라고 보고 있다. (학자에 따라서는 1525 또는 1527년, 1530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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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를 떠나 로마에 도착한 카라바조는 부와 명성을 쫓아 흘러든 수많은 무명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성공이라는 커다란 꿈을 가슴에 지닌 한 사람의 젊은 예술가에 불과하였다.
이때의 카라바조를 '애송이 화가'라고 표현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 표현은 카라바조가 로마에 도착한 것이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시점이었기에 아직 제대로 된 사회 경험이 없었을 거라는 선입견에다가, 로마라는 도시가 이탈리아에서 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몰려던 실력 있는 예술가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활동하던 중앙무대라는 점이, 카라바조의 실력과 그의 천재성을 간과하도록 만든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시점의 카라바조가 비록 가난한 무명의 화가였지만, 불과 몇 년 후에 그의 손을 빌어 탄생한 엄청난 작품들을 보자면, 약 4년이라는 도제 생활과 그에 이은 약 4년 간의 밀라노 생활이 그가 최고의 화가로써 성장하는 시간으로서는 넘칠 만큼 충분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십 대를 거쳐 이제 겨우 스물을 넘긴 앳된 카라바조에게, 채 8년도 되지 않는 시간이면 충분했을 거라는 주장을 아무런 의심 없이 할 수 있다니, 8년, 그 짧기만 한 시간에 인류의 예술사에 커다란 획을 그어 넣은 최고의 화가로 성장하였다니, 대체 카라바조 그는 얼마만큼의 천재였단 말인가."
로마에 도착한 카라바조는 삶에 있어서는 '애송이'에 불과하였겠지만 그림에 있어서만큼은 이미 '최고 중에 최고'의 실력을 갖춘 준비된 화가였다. 로마에 첫 발을 디딘 젊은 카라바조가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싶다.
"세상 사람들이여 나 카라바조를 영접하라. 예술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화가 카라바조가 드디어 로마에 도착했다."
하지만 카라바조에게 닥친 로마의 현실은 실로 험난하였다. 가진 것이라곤 몸을 들끓게 하는 열정과 가슴에 품은 꿈과, 그림을 그리는 재주밖에 없었던 카라바조는 뚜렷한 거주지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이곳저곳에서 머물면서 로마의 뒷골목을 전전하는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그의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물려준 유산이 어느 정도는 있었지만, 로마에 도착했을 때 카라바조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지만, 도제 생활을 마친 후 4년 여 간의 밀라노에서의 생활이 당시 카라바조의 궁핍에 직접적으로 관련 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