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태](성 마테오)를 주제로 한 연작 <성 마태의 소명>(Calling of Saint Matthew, 1600)과 <성 마태의 순교>(Martyrdom of Saint Matthew, 1600)의 성공으로 큰 명성을 얻게 된 카라바조에게 1602년에 있었던 [성 마태] 연작의 또 다른 작품인 <성 마태와 천사>(Saint Matthew and the Angel, 1602, Destroyed in 1945 and reproducted)의 인수거부 사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상처를 카라바조의 가슴에게 남겼다.
누구에게나 상처란 것은 아픈 것이긴 하지만 카라바조와 같이 야망이 크고 자기애가 강한 사람에게, 자신의 실력이 최고라고 확신하는 예술가에게 새겨지는 가슴의 상처는, 육체에 새겨지는 상처보다 더 큰 아픔을 주게 된다.
"인간이란 눈으로 볼 수 있는 상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에 더욱 아파하는, 연약하고도 신비로운 존재인가 보다."
아마도 이 사건은 그동안 [델 몬테 추기경]의 안정적인 후원과 로마에서의 커다란 성공으로 인해 어느 정도 다스려지고 있었던 카라바조의 불안정하고 충동적인 성향을 더욱 격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어떤 특별한 일의 시작과 그것에 이어지는 일의 진행이 딱히 어느 하나의 사건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닐 수 있지만, 남겨진 기록들을 쫓다가 보면 <성 마태와 천사>의 인수거부 사건이 있었던 시기부터 카라바조의 생활에 큰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는 안타깝게도, 그의 삶을 깊고 검은 계곡의 그늘로 더욱 빠져들게 만들었던 것 같다.
"산이 높아지면 그만큼 그늘 또한 짙어지는 것이, 세상사의 이치인가 보다."
어쨌든 [콘타렐리 채플]이 <성 마태와 천사>의 인수를 거부한 일은 카라바조의 삶을 얘기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었기에, 이 작품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림에 대한 상세한 내용과 심층적인 분석은 별도의 저서 <카라바조 예술의 이해> 편에서 다룰 예정이므로 여기에서는 작품의 인수거부와 관련된 상황적 배경을 언급한다.
<성 마태와 천사>(Saint Matthew and the Angle), 295 cm × 195 cm, 1602, Kaiser Friedrich Museum, Berlin(Destroyed in 1945 and reproducted)
<성 마태와 천사>에서 [성 마태]는 천사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놀란 듯 입을 약간 벌린 채로 조금은 멍청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다. 천사는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고 [성 마태]는 쩔쩔매면서도 어떻게든 천사의 지시를 따르려고 하는 일개 무지렁이처럼 보인다. 이 그림의 [성 마태]를 들여다보면 정말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라바조가 [성 마태]를 이렇게 그린 것에는 이런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귀하고 성스러운 천사가 갑작스럽게 [성 마태]의 눈앞에 나타나자, [성 마태]가 아무리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성인이라고는 하지만 크게 놀랐을 것이고, 그 순간의 [성 마태]는, 천사가 출현한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채 당황하는 일개 무지한 인간에 불과했을 것이야. 그러니 천사가 얘기하는 것을 무작정 따르는 것 밖에는 다른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을 거야”
작품에 있어 카라바조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직설적이고 사실적인 묘사와 그것을 통한 사건과 인물의 표현기법은, 적어도 이 작품에 있어서만큼은 당시 교회의 성직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교회는 성 마태와 천사의 표현이 매우 불경스럽다는 이유를 들어 작품의 인수를 거부하였고, 이에 카라바조는 천사의 출현과 성자의 영광을 성스럽게 미화한 새로운 작품 <성 마태의 영감>(The Inspiration of Saint Matthew, 292 cm × 186 cm, 1602, Contarelli Chapel, San Luigi dei Francesi, Rome)을 그려 같은 해인 1602년에 교회에 다시 제출하였고 이 작품이 오늘날에도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안에 있는 콘타렐리 채플에 걸려 있다.
<성 마태의 영감>(The Inspiration of Saint Matthew), 292 cm × 186 cm, 1602, Contarelli Chapel, San Luigi dei Francesi, Rome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자부심이 강했던 카라바조는 1602년에 발생한 이 인수거부 건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고 그것이 이후 카라바조가 저지른 각종 기행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물론 카라바조가 연루된 법정 사건의 기록은 이 인수거부 사건이 있기 전인 1600년부터 나타나고 있고, 카라바조의 이해할 수 없는 기행의 원인이 무엇 때문이지, 그 기원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특정 사건이나 특정 때를 꼭 집어 정확하게 얘기할 수 없겠지만, <성 마태와 천사>의 인수 거부가 있었던 즈음부터 그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격동의 세계로 더욱 깊이 빠져들어 간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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