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로부터 또는 무엇인가로부터,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렇지만 혼자서만 견뎌야 하는 아픔을 겪은 사람은, 그것의 상처가 뼛속 깊이 새겨져 있기에, 그래서는 안될 짓을 무질서하게 저지른다든가, 그래야만 하는 것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회피하려는 것 같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를 하곤 한다.
"어린 시절에 겪었던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은 카라바조에게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외상을 입혔고 그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는 그의 삶 전반을 지배하였다."
그것이 어떤 연유로 인한 것이건 간에, 토마소니가 카라바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1606년의 그날, 카라바조의 트라우마는 이제 그만의 심리적 외상을 넘어, 그를 죽음을 실행한 살인자의 이름으로 기록에 남겨지게 만들었다. 또한 그 사건 이후 더욱 심해진 심리적 불안정성과 정신적 충동성은 그의 작품을 통해 죽음에 대한 모티브를 더욱 사실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묘사하도록 이끌었다.
살인 사건으로 인해 시작된 그의 도피생활에 대해서는 "카라바조라면 그렇게 했을 것 같다."는 각종 추측들이 옮겨 적은 이의 글들과 뒤엉켜 전해져 오고 있다. 사실 기록이란 것 또한,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를 모아 텍스트로 옮긴 것일 수가 있어 ‘분명 그러했던 것’만이 글자 속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음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어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마치 사실인양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인간이 지나간 일을 인식하는' 방법이다. 카라바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카라바조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록이란 것들을 참조해야 하지만, 그것들 또한 서로가 어긋나는 부분들이 있어, 나름대로의 판단이 필요해진다.
살인사건과 그에 따른 참수형의 선고로 인해 카라바조는 서둘러 로마를 떠나 나폴리로 도피하였고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도피생활이 이어졌다. 도피생활 중에도 카라바조는 여러 교회의 성직자들로부터 제단을 장식할 성화를 주문받았다. 아무리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하였다고 해도, 카라바조는 자타가 인정하는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기간 중에 그가 그린 작품에서는 한 순간 부와 명성을 잃고 도망자의 신분으로 떨어진 카라바조의 절망적인 처지가 고스란히 반영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절망이란 ‘기대하거나 바라볼 것이 없게 되어 모든 희망을 끊어 버린 상태’를 뜻하는 단 두 글자로 이루어진 짧은 단어이다. 또한 실존철학의 측면에서 절망은 ‘인간이 극한 상황에 직면하여 자기의 유한성과 허무성을 깨달았을 때의 정신이 처하게 되는 상태’를 말하고 있다. 현실에서의 절망은 그것을 겪어야만 하는 사람에게 있어 너무 아프고, 희망의 불빛조차 사라져 버린 것 같은 암울하고 캄캄한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카라바조와 같은 천재 예술가에게 있어서의 절망은, 우리의 그것과는 '같지만 다른' 단어일 수 있다. 그의 절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천재는 재능이 아니라 절망적인 처지 속에서 만들어지는 돌파구’라는 샤르트르의 말을 귀담아 들어도 좋을 것 같다. 카라바조가 처했던 당시의 절망적인 처지는 어쩌면 그의 천재성을 더욱 촉진시켜 ‘카라바조만의 작품’을 탄생시키게 만든 강력한 촉매와도 같은 것이었을 수 있다.
또한 랭보가 스스로를 절망의 구덩이에 던져 넣고 그 속에서 발현되는 자신의 천재성을 쾌락처럼 유희한 것처럼, 카라바조 또한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탐닉했을지도 모른다. 비록 피할 수 없는 절망이라 해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는,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아름다운 결과를 맺을 수 있기에.
'자학으로의 도피'는 천재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충동적이지만 의도된 행보이다. 카라바조가 도피 시기에 그린 30여 점의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되면, 한 줄의 이 문장에 당위성을 부여해도 좋겠다.
<그리스도의 태형(채찍형)>(The Flagellation of Christ), 286 cm × 213 cm, 1607, Museo Nazionale di Capodimonte, Naples, Italy
카라바조가 도피생활 중에 그린 몇 작품을 살펴보자. 죄의 대가를 받아들이는 듯한 <그리스도의 태형(채찍형)>(The Flagellation of Christ, 286 cm × 213 cm, 1607, Museo Nazionale di Capodimonte, Naples, Italy), 죄로 인해 자유가 묶여버린 자신의 답답한 현실을 <기둥에 묶인 그리스도>(Christ at the Column, 134.5 cm × 175.4 cm, 1607, Musée des Beaux-Arts de Rouen, Rouen, France), 절망적인 처지에 빠진 자신을 나자로처럼 다시 부활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나자로의 부활(일어남)>(The Raising of Lazarus, 380 cm × 275 cm, 1609, Museo Regionale, Messina, Sicily, Italy)와 같은 작품에서는 도피 생활중이었던 카라바조의 심리상태를 고스란히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기둥에 묶인 그리스도>(Christ at the Column), 134.5 cm × 175.4 cm, 1607, Musée des Beaux-Arts de Rouen, Rouen, France
학자에게 있어 추측이나 편견은 위험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카라바조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는 기꺼이 그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카라바조의 삶과 예술을 들여다보는 것은 문학과 예술의 경계를 걷는 것만큼이나 아슬아슬하다. 그래서 그를 떠나지 못하고 있고, 영원히 떠날 수 없는 것일 수 있다.
어느 사이엔가 오늘 하루의 해가 서쪽 하늘로 잔뜩 기울어졌다. 카라바조의 인생에서 낮의 볕이 반짝이는 시간은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그의 행적을 가슴 졸이며 쫓아다니다가 보면, 환한 태양이 그의 머리를 비추고 있을 때도 그는 다가올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서쪽으로 길게 내려앉은 해가 수평선에 길게 누워있는 산등성 아래로 사라지는 것에는 ‘아’ 하는 탄식이 새어 나올 정도의 짧은 시간만이 소요될 뿐이다. 카라바조는 그의 태양이 최대의 조도로 빛을 뿜었을 때, 물감과 붓과, 그의 손과 눈과 가슴으로, 영원히 지지 않을 별빛을 예술사의 하늘에 총총히 박아 놓았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에는 그리 대단한 것이 요구되지 않기에, 그의 삶을 돌이켜 보면 어딘가 위로할 만한 것이 찾아질지도 모른다. 그냥 “괜찮니?”하는 눈빛으로 피식 입 꼬리만 올려도 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정말 괜찮아지는 수도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