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로는 [명암 대비 화법]이라고 번역되고 있는 [테네브리즘](Tenebrism)은 밝은 것과 어두운 것(명암)의 극명한 대조를 이용하여 작가가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라마틱하게 표현하였던 17세기 서양 회화의 한 기법이다. 테네브리즘의 어원은 이탈리아어에서 ‘어둠’을 뜻하는 단어인 [테네브라](tenebra)에 있다.
*[테네브로시](tenebrosi): 카라바조가 사용한 테네브리즘의 영향으로, 그림 속의 주인공들이 마치 검은 어둠(또는 암막)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 같은 ‘야경 효과’가 특색인 화파를 일컫는 말이다.
이와 같이 테네브리즘의 어원은 어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논리로 본다면 완전한 밝은 것은 ‘흰 것’이 되고 그 반대로 완전한 어두운 것은 ‘검은 것’이 된다. 경우에 따라서 '완전한 것'의 의미는 '극적인 것'과 같아진다. 카라바조의 그림에 대해 '극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그의 그림에서 '완전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회화에 있어 어둠을 표현할 수 있는 물감의 색은 검은색이다. 카라바조를 '테네브리즘의 대가'라고 부른다는 것은 그가 ‘어둠의 화가’라는 의미이다. 카라바조의 작품이 극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그가 ‘어둠을 가장 잘 다룬 화가’ 즉 ‘검정 물감을 완전하다 할 만큼 정말 제대로 잘 이겨 바를 줄 아는 화가’이기 때문이다.
그림에 검은색을 바르다니, 그것도 극히 좁은 부분이 아니라 상당히 넓은 부분에, 현대회화에서는 용인될 수 있는 기법이긴 하지만 카라바조가 살아갔던 시대에는, 카라바조가 아니었다면 감히 누구도 시도하기 어려웠을 혁신적이고 파괴적인 기법이었을 것이다.
빛과 어둠 그리고 그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인간은 빛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화가가 사용하는 물감의 색은 빛의 파장이 만들어내는 물질적인 현상이며 파장은 진폭과 주기를 가진 연속적이고 끊이지 않는 진동이다. 또한 현실 세계에서의 진동은 규칙적인 또는 비규칙적인 떨림이기도 하다. 그중에서 색은 규칙적인 주기를 가진 빛의 떨림을 통해 발현된 현상이다.
자연계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은 이러한 '빛과 색과 진동' 속을 살아가고 있지만 무디기만 한 인지 능력으로 인해 그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있기는 하지만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없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인간이 세상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관점에서 보게 되면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라는 말에도 일리는 있다.하지만 비록 인지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물은 빛의 진동을 통해 시각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중에서 어떤 사물의 진동은 인간의 무의식 속으로 파고들어 와서 육체와 정신에 즉각적이거나 잠재적인 영향을 미친다.
빛 또한 마찬가지여서 허공에서나 땅바닥에서, 인간의 바로 눈앞에서나 물체의 표면에서, 낮의 햇살에서나 밤의 어둠 속에서, 잠시 잠깐의 그침 없이 진동하고 있고 그 진동으로 인해 인간은 사물의 형체와 색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빛의 진동은 자연계의 한 현상이기도 하고 어떤 물체이기도 하며, 색이기도 하고 그림이기도 하고, 인간의 삶이기도 때론 누군가의 심상이기도 한 것이다.
빛의 진동이 색이라는 인지할 수 있는 현상으로 자연계에 나타나니, 자연계를 살아가는 인간이 색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과, 캔버스의 표면을 색으로 칠한 그림을 감상하며 무언가를 느끼게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이 자연계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는 한, 그림을 그리는 일과 그림을 감상하는 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둠의 화가 카라바조와 검정
빛의 발현으로 나타난 색 중에서 검은색만큼이나 선입견 강하면서도 세심한 느낌의 색은 찾아보기 어렵다.
흔히 검은색을 어둡다거나 쓸쓸하다는 다소 부정적인 감상에 연관시키곤 한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는 하늘을 보면 어딘가 스산한 느낌에 잠기게 된다. 슬픔과 고독에 연관된 검은색은 자신의 존재조차 흡수해버릴 듯 강렬해서 인간을 쓸쓸하고 먹먹하게 만든다.
인간의 감상은 검은색을 가장 애처로운 색이라고 여기기에 검정에 애수를 이입시키기도 한다. 누군가를 영원히 떠나보내는 길에 검은색 옷을 입고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이 이런 연유 때문이다.
하지만 다소 부정적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면들 이외에도 검은색은 사회적 지위나 우아함, 신비로움을 상징하는 색이기도 하다. 심리적인 측면에서의 검정은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과 그에 따른 중후함과 편안함을 주는 색이다. 그래서 고가의 제품의 경우 검은색이 많은 것이다.
검정은 주변을 빨아들이는 마력 또한 갖고 있다. 햇살이 화사한 오전의 한 때, 창 넓은 찻집에 앉아 속 하얀 커피 잔을 딸각거리고 있는 검정 원피스의 여인에게 누군들 눈길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까.
어둠의 화가 카라바조의 색은 검은색이다. 그의 그림에서 어둠은 지나치리만큼 검다. 그래서 카라바조의 작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색은 검정이다. 카라바조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자면 "명암을 저렇게 까지 극단적으로 표현해도 괜찮은 걸까."라는 의구심마저 들고, 때로는 그림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를 잊어버릴 만큼 검은 부분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마치 그 속을 뒤지다가 보면 무언가 숨겨둔 것이, 카라바조의 무언가를 그 안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것은 단지 카라바조의 그림에서는 '검은색이 다른 색보다 조금 더 흔하고 눈이 잘 가는 색'이라는 것을 부풀려 말하는 것은 아니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달빛과 별빛 하나 없는 깊은 밤 시간에, 조명 장치가 잘 설치된 세트장에서 그려진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카라바조의 작품에 대해서 아직 답을 찾고 있는 문제가 있다.
“기본적으로 검정이란 건 눈에 잘 띄지 않는 색이어야 하는데도 카라바조의 작품에선 왜 그렇지 못한 것일까. 왜 밝은 부분만큼 어두운 부분에 눈길이 가게 되는 것일까."
"카라바조는 대체 어떤 이유가 있기에 검정을 잘 다루고 싶었을까.”
카라바조는 이 의문에 대해서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만약 답이 없다면 세상에 뿌려져 있는 그럴듯한 주장들 중에서 답일 것 같은 것을 골라내어, 그것을 답이라고 여겨도 좋은 것일까. 카라바조는 그것에 고개를 끄덕여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