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8년 이후에 그린 카라바조의 작품 대부분은 성경에 나오는 사건을 주제로 한 종교화이지만 그가 살아가던 당대의 화풍이나 세계관, 종교관과는 거리가 있다. 카라바조의 작품에서는 극단적인 잔인함과 죽음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오브제를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종교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명시적인 성스러움'보다는 '이단적인 암시'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카라바조 작품의 이런 특징은, 그가 살아간 시대의 사회적 환경과 성장 배경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작품을 마주하는 이에게 혼란을 주기도 한다. 그는 종교화의 등장인물을 그가 살아가던 현실 세상의 거지나 불량배, 집시의 모습으로 그려 넣었고 심지어 성스러워야 할 성인을 무참히 난도질하거나 일개 무지렁이처럼 표현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또한 죽음조차 로마의 뒷골목에서나 행해질 법한 상스러운 행위로 격하시켜 아카데믹한 관점과 종교적 관점에서의 많은 비난을 자초하였지만, 그를 따르고 있는 예술가들과 추종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찬사의 대상이 되었다.
카라바조의 작품에서는 그의 내면세계를 추측해 볼 수 있는 흔적들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다윗과 골리앗>을 주제로 그린 세 편의 연작은 그의 내면을 더듬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세 편의 작품을 연도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1599년 작 스페인의 마드리드에 있는 <다윗과 골리앗>(David and Goliath, 110 cm × 91 cm, 1599, Prado, Madrid, Spain)
2. 1607년 작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90.5 cm × 116.5 cm, c. 1607,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3. 1610년 작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125 cm × 101 cm, c. 1610, Galleria Borghese, Rome, Italy)
카라바조는 <다윗과 골리앗>을 주제로 그린 이들 작품 속에서 다윗에게 머리가 잘린 골리앗으로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 넣음으로써, 자기 자신의 불안한 내면과 심리적 외상을 숨김없이 표출하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David and Goliath), 1599, 110 cm × 91 cm (43 in × 36 in), Prado, Madrid, Spain
카라바조는 그와 동시대에 활동하던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아니 그들보다는 더욱, 사실주의적인 관찰과 묘사, 극단적인 음영을 통해 선혈이 낭자한 잔인함, 분명한 메시지가 있는 상황과 등장인물의 행동 , 얼굴의 표정과 심리, 그리고 빛과 어둠을 그림 속에 옮겨 담았다.
이들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검붉은 피의 사실적인 묘사와, 밝음 만큼이나 극단적인 어두움, 섬뜩함마저 느껴지는 잔혹한 장면과, 꺼져버릴 것만 같은 어두운 표정이, 그의 내면에 숨어있던 어둡고 부정적인 심리를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는 그러한 것들이 단지 카라바조 식의 사실주의적인 표현 방법으로만 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인식 또는 무의식 속에서 표출된 내면의 상처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가 치유'의 행위이거나 자신이 지은 죄를 회개하려는 '속죄 행위'로 비칠 수도 있다.
연구자에 따라서는 그것들을 그의 '거칠고 짧은 삶과 죽음에 대한 암시' 내지는 '내면세계의 투사'라고 보기도 한다.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상징적인 모티브로 이용하여 작품 속에 투사하는 것은 예술가들의 일반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카라바조는 자신의 화풍을 끊임없이 변화 및 발전시킴으로써 서양 미술사에 있어 한 줄기 커다란 흐름을 만들어 내었다. 그는 종교적인 주제를 자신의 신앙생활과 실생활에서의 경험을 통해 사실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표현하였고,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성스러움과 세속 됨, 구원과 심판 같은 이중성의 대조를 극적으로 표현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있다.
카라바조는 어린 나이에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흑사병으로 잃었고, 어린 동생을 먼저 떠나보냈으며, 17세에는 어머니마저 사망하였다. 따라서 성장기 내내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통, 불안한 감정이 카라바조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것은 카라바조에게 지울 수 없는 심리적 외상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트라우마](trauma)로 불리는 정신적 외상이란 그리스어에서 '상처'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 [Traumat]에서 온 것으로 '과거에 겪었던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같은 상황이나 그와 비슷한 환경에 대해서 정신적으로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정신적인 상처'를 말한다. 오스트리아의 신경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Sigismund Schlomo Freud, 1856 – 1939)는 트라우마를 ‘히스테리 질병을 유발하는 스트레스’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어린 시절에 겪은 죽음의 공포와 이로 인한 정서적인 충격은, 그 죽음이 특히 가까운 가족에게 일어난 것이라면, 많은 경우 심리적 외상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카라바조가 어린 시절 겪은 가족들의 연이은 죽음과 그에 따른 공포와 절망감이 그의 심리적 외상의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어쩔 수 없이 맞이하게 되는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과,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된다는 체념이 현실세계에서 모순적으로 공존하면서 정서적인 성숙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죽음은 삶의 본질에 대해 더욱 고찰하게 만들면서 인간이라는 존재와 세상, 그것들의 관계에 대해 형이상학적인 탐닉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정신적 외상은 성인이 된 후에도 카라바조를 떠나지 않았고, 결국에는 뒷골목을 전전하는 무절제한 생활로 이어지며 갖은 기행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곳에 속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지금 어딘가에 있으면서, 그곳에 속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카라바조 또한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을 것이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어디이며, 나는 진정 여기에 속하고 있는 것일까."
존재하는 세상의 모든 만물과 현상은, 자신만의 고유한 파동을 갖고 있다. 하나의 존재는 자신과 비슷한 파동을 발산하는 다른 존재 또는 시대를 만났을 때 폭발적이라 할 만큼의 에너지를 발산하게 된다. 하지만 대상이 되는 그 존재와 시대를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 존재와 시대의 파동에 변화가 생긴다면, 그 에너지는 일순 사라져 버리게 된다.
로마에서의 카라바조는 자신과 비슷한 파동을 가진 강력한 후원자와 의뢰자를 만났고 그들이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았기에, 그리고 그 시대가 자신과 비슷한 파동을 가졌었기에, 최고의 화가로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미처 몰랐던 것 같다. 자신과 그들과 시대의 파동은 영원히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 파동이 바뀔 때면 어떻게든 그 변화에 자신의 파동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어쩌면 알고는 있었지만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 때문에, 또는 그의 심리적인 외상이 눈과 가슴을 가렸기에 그것을 간과했을 수 있다.
카라바조는 인생과 예술의 정점에서 그것을 불쑥 잃어버렸다. 그 현상에 대해 언급한 자료에서는 그 이유가 그를 후원하던 권력자들조차 ‘무마할 수 없을 만큼의 심각한 사건’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는 말이긴 하지만, 꼭 그렇다고 인정하기에는 꺼려지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을, 단지 이산(離散, Discrete)적으로 발생하는 국지적인 사건으로만 국한할 수는 없다. 하나의 사건은 이전에 발생한 다른 어떤 사건 또는 일련의 사건들의 재현 또는 변형의 연속 선상에 놓여있기 마련이다.
카라바조가 저지른 그날의 사건은 단지 그날에만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발생한 여러 형태의 사건들의 또 다른 발현이어서, ‘분명 언젠가는 그런 일 또는 그와 비슷한 정도의 일'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것은 그의 트라우마로 인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최고여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자신의 작품이 최고라는 예술가적인 교만으로 인한 것이었을 수 있다. 어찌 되었건 그가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은 내면의 정서적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할 수 있다.
예술가로서 정점에 서있었기에 카라바조는, 비록 그것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치명적인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자신의 명성과 위치를 다시 예전으로 복귀시킬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어쩌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몰라, 자신의 죄를 변명할 구실을 찾으려고만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점에서 갑자기 떨어져 버린 사람들 대게가 그러하듯, 나름의 노력을 기울임에도 불구하고, 대체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를 제대로 몰랐다. 결국 안절부절 조바심을 내었고 그 발버둥은 마치 늪에 빠진 한 마리 들짐승처럼 카라바조를 더욱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