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카라바조의 도피생활에 대해(1606-1610)

30. 카라바조의 도피생활에 대해(1606-1610)


1606년, 도피생활의 시작

생활인으로서의 카라바조는 이해하기 힘들 만큼 잦은 기행을 저질렀다. 그것들 중에는 '악동 카라바조'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져서 왜곡되어 전해진 것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카라바조의 사생활과 관련된 기록의 상당 부분이 부정적으로 비치게 된 것은, 생전에 그가 저지른 기행이 원인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것들 중에서 어떤 것은 단지 기행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엔 너무 심각한 것이어서, 아무리 그를 아끼고 감싸려는 입장에 있다고 해도, 악행이라는 거친 표현을 사용하도록 만들고 있다. 후원자들이 그의 뒤를 봐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으로 남겨진 것이 많다는 것은, 기록되지 않은 것은 분명 더 많았을 거라는 합리적인 추정이 가능하게 된다.


카라바조가 저지른 악행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것은 1606년에 발생한 토마소니 살해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로마의 법원은 카라바조에게 참수형을 선고하였지만, 이 판결을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을 당장에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제 카라바조는 야반도주를 하다시피 로마를 떠나야만 하는 도망자가 되었다. 카라바조가 태어난 해가 1571년이니 이때 그의 나이 겨우 35살이었다. 그 사유가 어찌 되었건 간에 토마소니라는 인물을 살해한 것이 명백하고 이에 법원이 참수형을 선고하였음에도 로마를 떠날 수 있었던 것은, 화가로서의 그의 재능을 아끼고 사랑한 귀족들과 고위 성직자들의 도움 덕분이었다.


1606년부터 시작된 카라바조의 도피생활은 처음에는 나폴리(Naples)로 그리고 몰타(Malta)로, 시칠리아(Sicily)로, 다시 나폴리로 이어지며 약 4년 여간 지속되다가 1610년 그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도피생활과 작품 활동

비록 범죄자의 신분이었음에도 카라바조는 가는 곳마다 줄곧 그 지역 유력 인사와 교회의 환대를 받았다. 그들이 카라바조를 환영하고 접대한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 당시 로마는 예술과 문화,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였다.

- 카라바조는 로마의 고위 성직자 및 귀족과 두터운 친분을 가진 인물이었다.

- 카라바조는 로마에서 뿐만이 아니라 이탈리아 전역에서 명성이 자자한 거장이었다.

- 중범죄자의 신분임에도 부족함 없이 도피생활을 이어갈 만큼 그의 뒤를 봐주는 강력한 배경이 있었다.

- 로마의 사법권이 그들이 사는 지역까지는 미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의 입장에서는 카라바조의 도피를 도와준다고 해서 그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거의 없고, 카라바조의 도피를 도와주게 되면 ‘로마 최고의 화가’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언젠가 카라바조가 사면을 받아 로마로 돌아가게 되면 로마의 고위 인사들에게 인연을 닿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 그들 스스로가 카라바조의 진심 어린 조력자가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카라바조의 작품 94점을 연도순으로 나열해보면 약 33점에 이르는 작품이 도피생활이 시작된 1606년 이후에 그려진 것으로 파악된다. 이 작품들 중에서 카라바조가 도피생활에 오르기 전에 이미 완성했을 몇몇 작품들을 제외한다 하더라도 약 30여 점의 작품들이 도피생활 중에 그려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숫자로 보면 카라바조의 작품 중에 약 30%가 도피생활 중에 그려진 것이기에, 그의 도피생활이 어떠했을 지에 대해서는 짐작을 해볼 수 있겠다.


어쨌든지 간에 카라바조는 그의 천재적인 재능 덕분으로, 비록 사형선고가 내려진 도망자의 신분임에도 로마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더 이상의 사건만 저지르지 않는다면, 신분 상의 문제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인 풍요와 신분상의 안전에도 불구하고 카라바조는, "사면을 받아서 로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강박증과 초조함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살인에 대한 죄의식으로 인한 불안함’이 이 시기의 카라바조에게 있었다고 보는 연구자들이 있는데, 도피생활 중에도 계속된 그의 기행과 참수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그의 노력, 토마소니를 살해하게 된 것에 대한 그의 항변을 보게 되면 ‘카라바조의 죄의식’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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