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6년에 발생한 토마소니 살해사건 후, 카라바조는 처음에는 로마의 남부에 있는 콜론나 가문의 영지로 피신하였다. 하지만 콜론나 가문이 당시 아무리 힘이 있는 집안이라고 하더라도, 로마의 관할권 안에 있는 한은 로마의 사법당국에서 내린 사형선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제부터 카라바조의 본격적인 도피생활이 시작된다. 로마를 떠난 카라바조는 먼저 나폴리(Naple)에 도착한다. 나폴리에는 [프란체스코 스포르차](Francesco Sforza)의 미망인인 [코스탄자 콜론나 스포르차](Costanza Colonna Sforza) 가문의 대저택(Palace)이 있었다.
앞서 카라바조의 성장과정을 다룬 글을 살펴보면 스포르차 가문이 카라바조의 도피를 도운 이유에 대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스포르차 가문은 콜론나 가문과 함께 카라바조가 어릴 적 살던 지역인 이탈리아 북부지역의 유력 가문이다.
카라바조 가족은 아주 현명하게도, 카라바조의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도 이 두 가문과의 관계를 계속적으로 이어 나갔다. 이 가문과의 관계는 카라바조가 로마에서 예술가로서 성공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도망자 신분이 된 카라바조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도움은 결코 하나의 방향으로 작용하는 행위는 아니다. 그들이 카라바조를 비호한 것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화가 카라바조만의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중범죄를 저지른 도망자 신분이라 해도 카라바조는 여전히 로마 최고의 화가였고 그의 작품에 대한 수요는 끊이질 않고 있었다.
결국 카라바조가 나폴리로 도피한 것은, 콜론나 가문과 스포르차 가문의 비호를 받으면서 로마의 고위 성직자들의 도움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로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화가인 카라바조는 로마 당국의 관할권을 벗어난 나폴리에서 와서 ‘나폴리에서도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묵주의 성모> (Madonna of the Rosary(Madonna del Rosario)), 364.5 cm × 249.5 cm, 1607,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Austria
카라바조는 나폴리에서 크기가 364.5cm × 249.5cm에 이르는 대작인 <묵주의 성모(또는 묵주의 마돈나)> (Madonna of the Rosary(Madonna del Rosario), 364.5 cm × 249.5cm, 1607,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와 390 cm × 260 cm 크기의 또 다른 대작인 <일곱 가지 자비로운 행동> (The Seven Works of Mercy, 390 cm × 260cm, 1607, The church of Pio Monte della Misericordia, Naples)와 같은 작품들을 주요 교회로부터 계속적으로 의뢰받았다.
<일곱 가지 자비로운 행동>(The Seven Works of Mercy), 390 cm × 260cm, 1607, The church of Pio Monte della Misericordia, Naples, Italy
<일곱 가지 자비로운 행동>은 자비의 일곱 가지 육체적 행위를 묘사한 작품으로 나폴리에 있는 [피오 몬테 델라 미세리코디아 교회](The church of Pio Monte della Misericordia)의 의뢰로 제작되어 현재도 그곳에 소장되어 있다.
이렇듯 나폴리에서 카라바조는 성공과 안전이 보장된 안락한 삶을 누렸다.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는 로마에서의 생활환경이나 작품 활동 환경과 하등의 차이가 없었거나, 어쩌면 그 이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육체적인 만족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카라바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사면을 받아 로마로 돌아가는 것이지 나폴리에서의 성공이 아니었다.
나폴리가 아무리 이탈리아 남부지역의 거점 도시라고는 하지만 카라바조에게 나폴리는 나폴리일 뿐이지 결코 로마가 될 수 없었다. 그는 결국 나폴리를 떠나, 거장이라는 그의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하지만 그곳에서라면 로마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을 것 같은, 로마로부터 더 멀리 떨어진 지중해의 작은 섬 몰타를 향해 바닷길을 헤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