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시칠리아의 카라바조 (1608 - 1609)

33. 시칠리아의 카라바조 (1608 - 1609)

몰타에서 도망친 카라바조는 시칠리아(Sicily)로 넘어간다. 카라바조가 시칠리아로 간 것은 친한 친구인 [마리오 민니티](Mario Minniti, 1577 – 1640)가 그 섬의 시라쿠사(Syracuse)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라바조와 마리오 민니티는 로마에서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지내던 초창기 로마 시절에 로렌초 시칠리아노(Lorenzo Siciliano)의 공방에서 만나 평생의 친구라고 여기며 지내던 사이였다.


1571년 생인 카라바조보다 6살 어린 마리오 민니티(1577년 생)는 카라바조가 로마를 떠나 도피생활을 시작한 1606년, 나이로는 갓 스물이 되었을 때부터 그의 고향인 시칠리아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한 지역 화가이다. 마리오 민니티는 카라바조가 1608년에 몰타의 발레타 감옥을 탈출한 후 시라쿠사에 도착했을 때는, 카라바조와는 달리 결혼을 해서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예술사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그 둘은 함께 [시라쿠사]에서 [메시나], 섬의 수도인 [팔레르모]를 여행하며 그들만의 우정을 계속해서 쌓아나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시칠리아의 [성안토니오 성당](Church of Sant'Antonio)에 걸려 있는 마리오 민니티의 작품 <다섯 가지의 신호>(The Five Signs)에서 사용한 색채와 음영 대조 기법(키아로쿠로(chiaroscuro))를 보게 되면 마리오 민니티 또한 카라바조의 영향을 크게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마리오 민니티는 또한 카라바조의 모델이기도 하였는데 카라바조의 1593년 작인 <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 (Boy with a Basket of Fruit, 70 cm × 67 cm, c.1593, Galleria Borghese, Rome)의 모델이 당시 16살이었던 마리오 민니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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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바구니를 든 소년> (Boy with a Basket of Fruit), 70 cm × 67 cm, c.1593, Galleria Borghese, Rome, Ita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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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는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와 메시나(Messina)에서 계속해서 명성을 이어나갔고 보수가 좋은 의뢰를 계속해서 받았다. 카라바조가 시칠리아에 머문 시기에 그린 작품으로는 <성녀 루시아의 매장> (또는 산타루치아(Santa Lucia)의 매장, Burial of St. Lucy, 408 cm × 300 cm, 1608, Chiesa di Santa Lucia al Sepolcro, Syracuse), <라자로의 부활> (The Raising of Lazarus, 380 cm × 275 cm, Museo Regionale, Messina), <양치기들의 경배(목자들의 경배)> (Adoration of the Shepherds, 314 cm × 211 cm, , Museo Regionale, Messina)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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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루시아의 매장> (또는 산타루치아(Santa Lucia)의 매장, Burial of St. Lucy), 408 cm × 300 cm, 1608, Chiesa di Santa Lucia al Sepolcro, Syrac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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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치기들의 경배(목자들의 경배)> (Adoration of the Shepherds), 314 cm × 211 cm, 1609, Museo Regionale, Messina



상기의 그림들을 살펴보면, 카라바조가 시칠리아에 머물던 시기에 그린 작품에서는 어둡고 음침하게 묘사된 배경 부분이 커지고, 인물들이 차지하는 부분이 작아짐으로써, 그림 속의 주인공이 마치 고립된 것 같이 느껴지는 형태로 변화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당시 카라바조가, 비록 물질적으로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지만, 시칠리아라는 섬에 고립된 자신의 처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또한 카라바조가 그 시기에 그린 제단화의 등장인물에게서는 인간의 나약함과 황량함, 절망적인 두려움마저 느끼게 되지만 그것들이 종국에 가서는 겸손과 온유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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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있어서는 진화라고 표현할 만큼이나 의미 있는 변화를 보였지만, 일상에서는 그런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시기의 카라바조는 무장한 채로 잠을 자고, 사소한 비난 한 마디에도 그리던 그림을 찢어 버리고, 지역화가(local painter)들을 공공연하게 조롱하기도 하였다.


카라바조의 기이한 행동은 그의 이력의 초창기부터 남겨져 있다. 예술 수집가이자 작가인 [줄리오 민니치](Giulio Mancini, 1559 – 1630)는 당대의 예술가들을 기록으로 옮기면서 카라바조를 '정말로 미친(extremely crazy) 사람'이라고 표현하였고, 카라바조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프란체스코 델 몬테 추기경 역시 그의 편지에서 카라바조의 '이상함(strangeness)'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카라바조의 이러한 기이한 행동은 몰타 이후 더욱 커져서 결국에는 영혼의 친구라 여겼던 마리오 민니티마저 카라바조의 곁을 떠나게 되었다.


카라바조는, 그가 시칠리아에서 그린 그림 속의 인물들보다 더욱 심하게 고립되었다고 느끼고 있지만, 탈출을 위한 빛줄기를 찾지는 못했다. 예술사학자(Art Historian)인 [프란체스코 수신노](Francesco Susinno, 1670-1739)가 18세기 초에 쓴 <메시나 화가들의 삶> (Le vite de' pittori Messinesi (Lives of the Painters of Messina))에는 카라바조의 시칠리아에서의 기이한 행동에 대한 여러 가지 다양한 일화들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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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것처럼 카라바조가 어린 시절에 받은 정신적 외상은 그의 내면에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트라우마를 심어 놓았다. 카라바조의 전기를 기록한 벨로리에 따르면 카라바조는 '두려움'으로 인해 한 도시에 머물지 못하고 시칠리아의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 다녔다고 한다. 물론 벨로리가 말한 이 시기 카라바조의 '두려움'은 누군가 자신을 체포하러 올 거라는, 그래서 죽을 수도 있다는 '현실에서의 두려움'을 말하는 것이지만, 카라바조가 어릴 적에 받은 정신적 외상으로 인한 '내면의 두려움'은 '현실의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켰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결국 카라바조는 1609년 늦은 여름 무렵에 9개월 동안 머물렀던 시칠리아를 떠나 나폴리로 돌아가게 된다.

초기 바로크 화가이자 예술 사학자인 [지오반니 바글리오네](Giovanni Baglione, 1566 – 1643)는 “그 당시 카라바조는 적에게 쫓기고 있었다."라고 기록하였지만 그 적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밝히고 있지 않다.

카라바조가 시칠리아를 떠나 나폴리로 간 것은 "시칠리아가 더 이상은 안전하지 않다."라고 느꼈고 "나폴리에서 콜론나 가문의 보호를 받으며 머무는 것이 더 안전하다."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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