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커피 연가, 몽마르트의 카페에서

25. 커피 연가, 몽마르트의 카페에서 (ver.4)



샤르레쾨르 대성당에서 내려다보는 파리는 커다란 호숫물에 그려 놓은 아름다운 풍경화 같다. 입술을 살짝 오므려 후, 하고 입바람을 불면 찰랑이는 수면에서 반짝이는 햇살이 눈을 찌푸리게 만들 것만 같은.


인파를 헤치며 골목길을 빠져나와 테르테르 광장에 도착한다. 광장 이곳저곳에 펼쳐 놓은 거리화가들의 그림을 둘러보지만 여행자를 익살스럽게 그린 케리커쳐가 대부분이라 눈여겨 볼만한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종아리와 발바닥에서 신호를 보내온다.


“커피나 한 잔 하면서 쉬었다가 갈까”


몽마르뜨의 커피 향이 걸음을 안내한다. 짙은 루주 빛 카페의 노천 테이블 하나를 차지한다. 네모난 광장이 물랑루즈의 무대처럼 몇 걸음 앞에 환하게 펼쳐져 있다. 파리의 작은 참새 에디뜨 피아프가 광장의 중앙에서 노래를 불러줄 것 같다.


가볍게 로스팅된 몽마르뜨의 갈색 하늘을 이불 삼아 선잠에 빠진 것도 같다. 테라스 난간에 걸려 있는 진갈색 화분에서 철 지난 꽃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가만히 손을 내민다. 타샤의 정원에서 만지작거리던 커피잔의 온기가 아직 손 끝에 남아있다.


“이곳이 도원경桃源境인 걸까.”


*** ***


깔끔하게 차려입은 웨이터의 인기척에 눈을 뜬다. 메뉴판을 펼쳐 든다. 이미 알고 있다. 파리의 메뉴판에는 더치커피가 없다는 것을. 찾을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잃어버린 것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인간이기에 그런 것일 뿐'이라고 여기기로 한다.



더치커피를 좋아하시나요


더치커피의 속살에는

갈색의 기다림이 녹아 있어요

그래서 연약하기만 한 그 투명한 향이

입안을 떠나지 않는 것이에요

하지만 왜일까요

그 맑은 빛과 향에서

이름 모를 외로움이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그것이

더치커피의 운명인가요



돌아보니, 아니 돌아볼 필요도 없이, 커피를 무척 좋아했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커피가 좋아 커피가게를 꾸리게도 했다. 무모함을 감내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이 너무 그립다.


"지난 것을 그리워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일 뿐이다."


지금도 그때처럼 커피를 좋아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나만의 커피’에 대한 고집이나 편견을 갖고 있지는 않다. 커피를 진정으로 좋아하게 되면 커피를 구속하지 않게 된다. 커피는 자신의 갈색 빛과 투명한 향을 맑은 물에 녹여 넣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랑스러운 음료이다.



그리움의 아침 더치커피


그리움이 소나기구름처럼

떼를 지어 밀려오는 아침,

축 처진 어깻죽지를 누른

간 밤의 외로움을

삶의 무게에 한 방울씩 순응하는

너의 부드러운 체취에

서럽게 더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잊어야만 위안받는

싸늘하게 외로운 아침,

속 하얀 커피 잔에 갇힌

갈색빛의 뽀얀 외로움에

그리움을 녹여 넣진 말아야겠다


진갈색 둥근 호수에 잠겨

아직 깨어나지 않은 이른 아침,

문득 찾아드는 정체 모를 슬픔이

온 밤을 기다려 찾아온 너에게

눈물방울 더하지는 일은 없어야겠다



흰 종이 위에 박힌 글쟁이의 글과 하얀 캔버스 위에 담긴 그림쟁이의 그림이, 둥그런 유리통에 갇힌 더치커피와 어딘지 닮아 보인다. 지금 이 순간, 저마다의 갈색 코트를 입은 테르테르의 이방인과 거리의 화가는 더치커피를 떠올리게 하는 갈색 향기의 오브제이다.


'파리의 커피'가 테이블 위에 놓인다. 테르테르 광장의 여기저기를 순서 없이 바라보며 커피잔을 달그락거린다.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일본어와 중국어, 구분할 수 없는 말소리들이 벌떼의 날갯짓소리를 뿜어내며 공명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여기에 있어온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한다. 떠나지 않으려는 이의 형상이 찾아드는 이의 그림자에 묻힌다. 몽마르뜨의 작은 웅덩이 테르테르 광장은 사람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신묘한 주술을 읊는다. 광장의 흡인력에 시간을 맡겨 버린 여행자는 어느새 몽마르뜨의 풍경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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