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물의 포자들이 태양을 삼켜 버렸나 보다. 낮의 어둠은 밤의 밝음보다 사람을 더 센티멘털하게 만든다.
얼굴을 들어 철탑의 꼭대기를 올려다본다. 파랗지도 검지도 않은 하늘에 갇혀버린 철탑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 까마득하다는 것은 어지럽다는 것인가 보다. 괜히 날씨 탓을 해본다.
에펠탑(La Tour Eiffel)은 난쟁이 피조물들이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린 날카로운 종이비행기 같다. 저기 꼭대기에 오른다면 손을 펴서 하늘을 휘젓게 될 것 같다.
잔뜩 부풀었던 기대감은 매표소 앞에서 이내 수그러진다. 바람 많은 날이라 꼭대기층은 폐쇄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꼭대기 바로 아래층까지라도 갈 수 있다니. 살아가다 보면 예기치 않게 맞닥뜨리는 일들이 어디 이런 것뿐이랴. 빠른 체념은 적당한 위안을 낳는 법이다.
“이런 날이 에펠을 오르기에 더 좋은 게지.”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머릿속의 중얼거림이 입 밖으로 언뜻 새어 나온 것도 같다.
다시 두 갈래길의 입구에 선다. 이쪽은 계단을 지그재그로 걸어서 올라가는 느린 길이고, 저쪽은 리프트를 타고 수직으로 상승하는 빠른 길이라고 한다.
마음은 벌써 계단길을 따라 파리의 허공을 걸어 오르고 있지만 뒤척이기만 했던 간밤의 잠자리를 핑계 삼아 리프트를 타고 오르는 줄을 선택한다. 에스프레소 커피 두 잔으로 겨우 깨어난 오늘 첫 시간을 생각해보면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다시 중얼거린다. 행여 누가 듣지나 않았을까, 괜한 쑥스러움에 지도를 펼쳐 든다.
“파리는 사람을 중얼거리게 만드는 도시인가 보다.”
일개미의 행렬처럼 기다랗게 이어진 사람의 줄에 끼어서 입장권을 구입한다. 리프트의 입구를 찾아 걸음을 옮기니 다시 더 긴 줄의 끝에 서라고 한다. 하나가 끝났으니 다른 하나가 시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뿐이다. 루브르나 개선문, 에펠탑과 같은 파리의 명소를 입장하기 위해선 생각보다 더한 인내가 필요할 때가 있다.
“젠장 파리는, 사람의 인내력을 시험하려는 아주 고약한 도시임이 틀림없어.”
이미 몇 번이나 이 쇳덩어리를 올랐었고, 그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되뇌었던 것 같은데도 파리를 올 때면, 그래야 할 별다른 이유가 없는데도 다시 이 줄에 서있는 나와 마주치게 된다. 그래서 어떤 마법의 주문이 에펠탑에 걸려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여길 때도 있었던 것 같다.
“물기에 갇히고 바람조차 거센 오늘 같은 날에 저 철탑에 오른다면, 마법사가 주문 외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몰라.”
이유 없이 에펠탑을 오르는 것은 내려가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돌을 굴려 산을 오르는 시지프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늘 처음의 그대로인 것이 분명한데도 찾을 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게 만드는 것이 파리와 에펠탑이다. 가만히 보면 이 둘은 오래 살아온 노부부의 미소처럼 점점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대체 무엇이 파리로, 에펠탑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일까."
"어째서 파리를, 에펠탑을 맴돌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결국에는 다시 돌아오고야 마는 것은, 여태껏 알아내지 못한 어떤 인연의 끈이 그들과 나 사이에 묶여 있기 때문일 수 있다. 파리의 에펠탑 아래에서는 뫼비우스의 트랙에 빠진 나를 만나는 것이 이젠 어색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