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의 고백>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미완성 단편소설로서 1931년 독일어판 <만리장성의 축조>(Beim Bau der Chinesischen Mauer)에 <Forschung eines Hundes>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처음으로 발간된 작품이다.
<어느 개의 고백>에서 저자인 카프카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이자 인간의 가장 오래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개’를 주인공으로 삼아 읽는 이로 하여금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만들고 있다. <어느 개의 고백>의 주인공인 개는, 통속적으로 취급되고 있는 ‘천한 존재로서의 개’가 아니라 ‘일반적인 개와는 다른 구도자로서의 존재’이다. 따라서 이 개는 밤마다 글을 씀으로서 구도의 길을 걸어가던 카프카 자신이자 <어느 개의 고백>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진리를 깨닫고 싶어 하는 한 ‘개 철학자’가, 자신의 종족인 다른 개들과 함께 지내온 삶에 대해 고찰하고 자신의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했던 실험에 대해 보고한다. 이 주인공 개 철학자는 자신의 연구를 보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보고하고 있는 대상이 ‘개’이며 그 또한 ‘개의 일족’이면서 또한 ‘다른 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에 대해 ‘고백’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다음과 같은 첫 문장이 <어느 개의 고백>으로 이끈다.
나의 생활도 제법 변했지만 중요한 부분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과거를 돌이켜서 내가 아직 개라는 족속의 일원으로서 생활하고 개라는 족속의 관심사를 나의 관심사로 삼았던, 많은 개들 중에 하나의 개였던 시절을 회상해 본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화자는 ‘어느 개’라는 ‘개 종족의 일원’이지만 그는 일반적인 개와는 다른 개다. 이 개가 다른 개와 달라진 것은 자신의 의지와 인식에 의한 것이다.
그가 아직 어린 개였을 때 ‘우연히’ 본 일곱 마리 개가 행진을 하고 튀어 오르는 모습에서 그는 신비로운 예술적 체험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그를 일반 수준에 있는 개들과는 다른 개로 성장하게 만들었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것의 ‘계기’는 우연하게 찾아오는 것이며 그것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의지에 따라서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하고, 그냥 지나쳐가는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게도 된다.
책의 문장들을 탐닉하다 보면 독자는 화자이자 주인공인 ‘어느 개’가 ‘개’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되고 어느 사이엔가 ‘어느 개’를 ‘그’라는 ‘개 이상’의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제 그는 ‘일반적인 개를 넘어선 개’이자 ‘개 철학자’가 되어 일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인간을 이미 훨씬 넘어서 있다.
그는 자신의 종족인 다른 개들이 보이는 관심과 행동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들의 습성을 연구한다. 그가 연구를 시작한 주제는 "개들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개 종족은 무엇을 먹고 살아가며, 먹을 것은 어디에서 생기는가”와 같은 것이다.
그는 다른 개들은 도대체 어떻게 삶을 영위해 가는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그런 그의 연구는 ‘개의 음악’에 까지 도달한다.
연구에 몰두하던 이 개 철학자는 고독에 파묻혀 단식을 시작한다. 그러나 어느 사냥개와의 만남과, 눈앞으로 다가온 죽음에 대한 인식이 그의 의식체계를 변화시킨다.
그가 이 연구를 통해 찾아 낸 것은 스스로에 대한 고백의 형태로 기술되며 그것은 또한 개가 아닌 ‘구도를 찾아 나선 어느 인간의 고백’이기도 하다. 그의 독백과도 같은 보고는 이어진다.
저는 자연사自然死할 때까지 반드시 견디고야 말 것입니다.
불안에 가득 찬 질문에 대해서는 아마도 노년기에 느끼는 마음의 평화가 더욱 좋은 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저 스스로의 침묵을 지키고, 그 침묵에 감싸이면서, 평화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저는 고독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사리를 제대로 판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 <어느 개의 고백>은 ‘보는 것이 제한된 상태로 진리를 찾는 어느 개’를 통해 ‘보는 것이 제한된 상태로 진리를 찾으려는 인간’의 부족하기 짝이 없는, 그러나 그럴 법하게도 보이고 있는 인식능력을 돌이켜 보게 한다.
인간이 가진 인식능력은 개 철학자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음을 우회적이지만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인간의 인식능력의 부족함은 인간 자체의 부족함으로 이어지게 된다. 즉 인간은 살아가면서, 넓은 범위의 많은 문제들을 다루게 되지만 제한된 지식이 만든 제한된 인식능력으로 말미암아, 대개의 경우 그리 가치를 둘만한 것이 아닌 것에만 도달할 수 있을 뿐이다.
카프카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실존’과 ‘철학’의 경계가 흐려지기 일쑤이다. 이러한 점은 카프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자 또한 단점이기도 하다. 또한 카프카의 작품은 초현실적 상황을 인간이 직면한 현실을 기반으로 상징적이고도 우회적으로 묘사하였기에 세월의 테를 더 둘러야만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
따라서 젊은 시절에 만난 카프카와 중년에 만나는 카프카, 노년에 만나게 될 카프카는 분명 ‘동일한 한 사람의 카프카이긴 하지만 서로 다른 카프카’로 비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사람의 인격을 지닌 또 다른 존재로 변신한 ‘동물이지만 사람이기도 한’ 주인공에 의해 이야기가 전개되는 ⟪변신⟫이나 ⟪여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일족⟫, ⟪어느 개의 연구⟫에서 읽을 수 있는 사건의 전개와 심리적 상황의 묘사는 세월의 곰삭음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 깊은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게 되기에, 일단 카프카의 작품세계로 들어서게 되면 카프카를 벗어나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사람들은 프란츠 카프카를 '실존주의 작가' 또는 '실존주의 사상가'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철학적 기반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개의 고백⟫이나 ⟪변신⟫과 같은 작품들을 탐독하다 보면, 주인공에게 부여된 부조리한 상황과 죽음, 그것의 암시적인 전개 과정에서 카프카의 폭넓은 실존적 사상을 접할 수 있게 되어, 그에게 가졌었던 의문들이 얼굴을 붉어지게 만드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무엇인가로의 변신’을 모티브로 한 그의 작품 세계들은 또 다른 의문을 낳고 있다.
왜 하필 변신의 피조물이 개나 벌레와 같은 동물이란 말인가. 변신이란 게 어쩌면 가면과 같이 용기 없는 스스로를 가리려는 장치는 아닐까. 또한 그 장치가 카프카가 죽은 후에나 그의 작품들이 인정받게 되는 어떤 요인으로 작용한 것은 아닐까.
작품에 반영되는 작가의 사상은 그가 살아간 시대의 문화와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카프카가 작품에 담아낸 그것들은, 어쩌면 시대를 너무 앞서 아주 멀리까지 가버린 것일 수 있다.
카프카가 살아가던 시대적 환경 속에서, 아직 젊었던 그로써는 그가 처한 상황에 대해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 프라하라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적 환경과 그 속에서 유대인으로 성장하고 교육받아야만 했던 그의 태생적 뿌리에서, 자신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인지적이고 미인지적인 카프카의 굴레를 추측해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문학을 ‘소수자의 문학’이라고 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간에 사회 시스템의 거대한 굴레 속에서 개, 쥐, 벌레로의 변신을 통한 인간의 실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카프카의 작품들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그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사색의 망망대해를 항해하게 된다.
다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펼쳐본다. 1959년 기해년은 제14호 태풍 사라가 한반도를 관통하며 엄청난 피해를 남겼던 해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의 물가를 고려하면 300원이란 책값의 부담에도 첫 발행연도인 그해에만 최소 3쇄가 인쇄되었을 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참고로 1959년에 80kg 쌀 한 가마니의 가격은 가장 쌀 때가 850원이었고 가장 비쌀 때가 1320원이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출처: 뉴스서천(http://www.newssc.co.kr)) 따라서 300원이라는 책값은 쌀 삼 분의 일 가마니 값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한국의 지성들에게 프란쓰 카프카의 작품은 그 책값 이상의 가치를 지녔으리라. 그리고 그들의 인생에 분명 ‘얼어붙은 바다를 위한 도끼 한 자루’와 같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생각도 덧붙여 본다.
<어느 개의 고백>의 마지막 문장에서 사유가 멈추어 선다.
“자유! 물론 현재 허용되고 있는 자유는 가냘프고 연약한 식물과도 같은 자유이긴 하지만 그것이 어떠한 자유이든 간에 그것은, 하여튼 일종의 소유물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by Dr. Franz KO(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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