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카프카, <어느 개의 고백>의 출판에 대해

카프카, <어느 개의 고백>의 출판에 대해


카프카의 ⟪어느 개의 고백⟫은 그의 미완성 소설인 <성>(The Castle)을 쓴 직후이자, 그가 사망하기 약 2년 전인 1922년 9월과 10월에 집필하였다. ⟪어느 개의 고백⟫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외면적인 특징은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A Report to an Academy, <학술원에의 보고>),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Josephine the Singer,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일족》), 《굴》(The Burrow)과 같이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1931년 독일어판 출간

<어느 개의 고백>은 1931년에 독일 베를린의 출판사인 [Gustav Kiepenheuer Publisher]에서 출간된 ⟪만리장성의 축조⟫(<만리장성의 건설>, Beim Bau der Chinesischen Mauer, Gustav Kiepenheuer Publisher, Berlin, 1931)에 카프카의 다른 글들과 함께 실려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의 기본 정보는 다음과 같다.


Franz Kafka; Nachwort von Max Brod & Hans Joachim Schoeps, 266pages, 20cm


1883년생인 카프카가 사망한 해가 1924년이니, 숫자적으로 보게 되면 ⟪어느 개의 고백⟫은 작가인 카프카가 사망하고 나서 약 7년이 지난 후에야 작품으로 출간된 셈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이 대게 그러하듯이, ⟪어느 개의 고백⟫ 또한 출간에 있어서만큼은 카프카의 자의가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활자들이 나열되었고 그 위에 검은 잉크가 묻혀서 종이 위에 박혀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31년 만리장성의 축조 독일어판 표지.JPG 1931년에 출판된 카프카의 <만리장성의 축조> 초판


// 독일 베를린의 Gustav Kiepenheuer 출판사가 발간한 <만리장성의 축조> 초판의 표지.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막스 브로트의 이름이 함께 올라가 있어 카프카의 유고 출판에 있어 그의 역할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출판사의 출판 정보에서는 막스 브로트가 이 책의 공동저자인지 편집자인지를 구분하기 어렵게 표현되어 있다. //


카프카가 비록 ‘자신의 유고들을 모두 불태워 달라’는 부탁을 그의 문학적 동료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던 막스 브로트에게 남겼다고는 하지만, 카프카는 자신의 글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 강했기에, 그 부탁이 실현되기를 진정으로 원했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카프카가 쓴 대부분의 글들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며 <어느 개의 고백> 또한 그와 마찬가지이다.



1933년 영문판 출간(런던)

카프카의 글들이 지금과 같이 알려진 것에는 영문으로 번역되어 런던과 뉴욕에서 출판된 것이 크게 기여하였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저자의 또 다른 저서인 <카프카의 삶과 사상, 그리고 남겨진 것들>에서 다루고 있다. <어느 개의 고백> 또한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영국의 런던에서 번역 및 출간되었고 뒤이어 미국의 뉴욕에서 출간되었다.


<어느 개의 고백>의 최초의 영문 번역판은 1933년 영국의 런던에 발간되었다. 당시 Secker & Warburg 출판사에서 <프란츠 카프카: 만리장성과 다른 단편들>(<FRANZ KAFKA: The Great Wall Of China and Other Pieces>)이란 제목으로 윌라와 에드윈 뮤어(Willa and Edwin Muir)가 독일어판 <Beim Bau der Chinesischen Mauer>을 번역한 것을 발간하였는데 여기에 <Investigations of a Dog> 제목으로 포함되었다. 카프카가 독일어로 쓴 <어느 개의 연구>는 그가 사망한 후 약 9년이 지난해이자 독일어판 초판이 발간된 후 2년이 지난해인 1933년에 영문으로 번역되어 영국의 런던에서 출간된 것이다.



1946년 영문판 출간(뉴욕)

<만리장성의 축조>의 미국 뉴욕판은 1933년에 영국 런던판이 발간된 후 약 13년이 지난 1946년 Schocken Books 출판사에서 <FRANZ KAFKA: The Great Wall of China: Stories and Reflections>제목으로 발간되었으며 <어느 개의 고백>은 이 책에 수록되었다.

1924년 카프카가 사망한 후 약 22년이 지난해이자 1931년에 독일어판 초판이 발간된 후 약 15년이 지난 1946년에 카프카의 <어느 개의 고백>은 미국의 뉴욕 땅을 밟은 것이다.


뉴욕판 <만리장성의 축조>에 실린 <어느 개의 고백>은 3페이지에서부터 78페이지까지를 차지하고 있다. 목차와 같은 부분을 제외한 내용 부분에서의 가장 앞에 실려 있으며 분량으로는 75페이지에 해당한다.

목차와 출판 정보, 기타 설명 부분 부분까지 합친 전체 페이지 수가 335페이지 정도이니 <만리장성의 축조>라는 책에서 <어느 개의 고백>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해 볼 수 있다.


1946년 만리장성의 축조 뉴욕 초판.JPG 1946년에 발간된 <만리장성의 축조> 미국 뉴욕판 초판본: 다른 카프카의 영문 초판본들과 함께 저자가 소장중이다


많은 문헌에서 카프카의 <어느 개의 고백>을 단편소설이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사실 75페이지라는 영문판에서의 분량으로 본다면 단편소설이라기보다는 중편소설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1959년 한국어판 출간

<어느 개의 고백>은 <변신>과 같은 카프카의 다른 작품에 비해서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미완성의 작품이 단행본으로 한국에서 출간된 것이 1959년이니, 1924년에 카프카가 사망하고 나서 약 35년이 지난 해의 일이자 1931년에 독일어판 초판이 발간된 후 28년만의 일이다.


<어느 개의 고백>의 한국어판 출간에 있어 저자를 놀라게 하는 것은 ‘단행본’ 형태로 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어느 개의 고백>을 메인타이틀로 한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 안에는 카프카의 다른 단편인 <관찰>과 <굶는 광대>가 ‘外 2編’으로 함께 포함되어 있지만 책의 표지 중앙을 커다랗게 차지하고 있는 작품은 <어느 개의 고백>이다.


독일어판과 영문판에서는 <어느 개의 고백>이 카프카의 더 많은 글들과 함께 <만리장성의 축조>라는 제목의 책에 실려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당시 한국 지식인층의 독서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고 깊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한국전쟁이 1953년 7월 27일에야 휴전협정을 맺고 중단되었으니, 1959년이란 시기는 아직도 전쟁의 상처가 한국 땅 도처에 남아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에서 카프카의 ⟪어느 개의 고백⟫을 메인타이틀로 한 책이 출간되었다’라는 것의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대학에서 기거하던 80년대에 들어서조차, 소위 책 좀 읽는다는 이들만이 귀동냥과 책 동냥으로 접할 수 있었던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그것도 미완성작인 ⟪어느 개의 고백⟫을, 1959에 메인타이틀로 출간한 것에는, 그것도 초판이 발간된 1595년에 3쇄까지 발간된 것에는, 분명 어떤 깊은 사연이 있었을 터라는 것 정도는 짐작해 볼 수 있다.

1959년 어느 개의 고백 한국어판 1판 3쇄.JPG 저자가 소장 중인 프란츠 카프카의 ⟪어느 개의 告白⟫ 1959년 초판 3쇄

// 서기로는 1959년, 단기로는 4292년 6월 20일에 초판 1쇄를 출간된 이 책은 지금과는 달리 세로쓰기와 위아래가 나뉜 2단으로 편집되어 있다. 저자의 소장본은 초판 3쇄인데 초판 1쇄와 같은 해인 1959년 11월 10일에 인쇄되었다. 이를 통해 출간 첫 해인 1595년에 3쇄가 발간된 것을 알 수 있다. //


하지만 가끔은 알아차릴 수 없는 내용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귀를 닫아버리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지금도 그럴 때인 것 같다. 그래서 젊은 날의 그 어느 날, 먼지 풀풀 날리는 그 헌 책방의 나무 선반 위에서 [프란쓰 카프카]란 다소 생소한 이름을 가진 외국 작가를 만났던 것만이, 그가 쓴 <어느 개의 고백>을 손에 쥐었던 것만이 지금에 와서 만질 수 있는 추억일 뿐이라고, 그냥 그렇게 여기기로 한다.


책이 인쇄된 1959년, 아니면 그 다음 해인 1960년의 명동 어딘가에 박혀있던 다방의 구석 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아, 실내에 부유하는 음악의 자잘한 퍼덕임 속에 뽀얀 담배연기를 뿜어 넣으면서 세로로 내려 찍힌 검은 문자의 물결에 눈빛을 반짝거렸을, 잘 다린 말끔한 양복에 기름 바른 머리를 양쪽으로 가지런하게 빗어 넘긴, 아마도 대학생이었을 이 책의 첫 주인을 떠올려 본다.


세월은 흘러가기 마련이고 십년이란 시간의 고개를 몇 번이나 지나 온 오늘의 그는, 같은 하늘 아래의 다른 어딘가에서 흰머리가 성성한 노년의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이 책이 그의 손을 떠나 나의 서재로 옮겨 온 것인지, 왜 그는 이 책을 떠나보내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는 아직도 푸릇한 시절의 그의 손에 잡았던 프란쓰 카프카의 이 책 ⟪어느 개의 고백⟫을 기억하고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 어쩌면 회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에는 태평양을 건너 뉴욕 땅으로 돌아 오게 된 것은.


by Dr. Franz KO(고일석)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596011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카프카의 단편소설, 어느 개의 고백: 제목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