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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철학과 카프카의 문학

들뢰즈의 철학과 카프카의 문학


독자들은 이미 알아차렸을 것이다.

들뢰즈의 사상과 카프카의 사상 사이에는 영역이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크다는 것을.

카프카의 문학이 소수자의 문학이라고 말할 때 사용하고 있는 ‘소수’라는 개념과 들뢰즈가 말하는 ‘소수’라는 개념은 다르면서도 같다는 것을.


카프카의 문학을 소수자 문학이라는 것은, 그의 정체성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즉 민족적, 언어적, 사회적 소수로서의 카프카가 쓴 작품이라는 점이 카프카의 문학을 소수자 문학이라고 보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들뢰즈의 시선으로 본다면 카프카는, 기존 사회 시스템에서 스스로의 코드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기존의 코드를 재코드화하지 못한 집단에 속하는 사람이다.

카프카 또한 욕망하는 기계이기에 탈주를 통한 더 나은 삶으로의 전이를 욕망하였지만 사회시스템과 카프카의 태생적 배경은 그가 다수가 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래서 카프카는 소수자의 글을 썼고 그의 문학을 소수자 문학이라고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하고 학업을 마친 유대인이었다.

그는 글을 씀으로서 구도의 길을 걸었던 작가였지만 체코어나 히브리어가 아니라 독일어로 글을 쓴 독일계 유대인이기도 하다.


카프카의 작품은 프라하라는 독일의 한 변방 식민지에서 소수자인 유대인이 쓴 글의 뭉치이다.

그래서 카프카의 작품에서 대문호 괴테의 작품에서처럼, 풍요롭고도 아름다운 문장들을 만날 거라는 기대는 큰 실망감만을 안겨주게 된다.

카프카의 글에서는 빈곤하면서도 간결한 문장들이 ‘독특하고도 특색 있는 내용을 담아’ 기다리고 있다.

카프카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언어적 빈곤함이란 표현의 결핍이 아니라 간결함이고 탈주를 통해 탈영토화를 이룰 수 있는 여지인 공간의 빈틈이다.


카프카는 수적 다수의 언어인 체코어와, 태생적 다수의 언어인 유대어로부터 탈주하여, 그를 소수자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정치경제적 다수의 언어인 독일어로 작품을 씀으로서 스스로를 ‘다수의 소수’에 배치하였다.

어쩔 수 없는 여건의 강요에 의해 이루었던 이 재배치가 결국에는 그가 이룬 최고의 재코드화의 결과물이 되었다.

그가 다수의 소수가 된 것은 욕망하는 기계로서 그의 욕망을 따른 결과물이며, 보기에 따라서는 순리를 거스른 것이었기고 하고, 순리를 따르는 것이었기도 하다.

들뢰즈와 카타리는 그들의 저서 <천개의 고원>에서 ‘제자리에서 유목하기’를 언급하면서 탈주(flight) 혹은 유목(nomad)이 여행이라든가 혹은 헤매고 다니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카프카 소설의 주인공들은, K로 대표되는 그들은 절대적인 자유를 원한 것이 아니며 그러한 것을 믿지도 않는다.

다만 그들은 하나의 출구를 찾아 그들을 가둔 배치에서 탈주하기를 원하고 그렇게 “되기”의 과정에 오르려는 인물들이다.


카프카는 또한 현실 세상의 부조리함과 인간 실존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사회시스템에 의해 인간은 점차 더 소외될 것임을 그가 창조한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말하고 있다.

펜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정리할 수 없는 의문이 자꾸 미적거리며 시간을 끌게 만든다.

“들뢰즈가 그의 정치 철학을 기반으로 카프카의 문학을 소수의 문학으로 해석하는 것은, 카프카의 절친이자 문학적 동지였던 막스 브로트가 그의 정치적인 신념을 기반으로 작가 카프카를 유대인의 시온주의자에 연관 지은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by Dr. Franz Ko(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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