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Deleuze)와 가타리(Guattari)는 카프카의 작품들을 [리좀(rhizome)이며 굴(窟)]이라고 표현하였다. 리좀이란 용어는 줄기가 뿌리와 비슷하게 땅속으로 뻗어 나가는 땅속줄기 식물을 가리키는 식물학에서 온 것으로,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좀을 그들이 제시한 새로운 형태의 관계 맺기 유형(리좀모델)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좀을 수목모델과의 대비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였으며, 이분법적인 대립에 의해 발전하는 서열적이고 초월적인 구조(이항 대립적이고 위계적인 현실 관계 구조)와 대비되는 내재적이면서도 배척적이지 않은, 자유롭고 유동적인 접속이 가능한 잠재성의 관계들의 모델로서 리좀을 사용하였다.
수목모델이 부분의 가능성들을 제약하는 위계와 질서를 세우는 구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반면에 리좀모델은 그런 제약들로부터 자유롭다. 리좀은 잡초의 일종인 크랩그라스(crab grass, 바랭이)처럼 수평으로 자라면서 자신의 덩굴들을 뻗는데 그 넝쿨들은 다시 새로운 식물의 형태로 자라나게 된다. 그렇게 자라난 각각은 다시 새로운 줄기를 뻗는 방식으로 중심(center)과 깊이(depth)가 없이 자라면서 불연속적인 표면의 형태를 형성한다.
리좀은 이와 같이 하나의 중심을 기점으로 자라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주관하는 주체를 지니지 않으며, 또한 깊이가 없이 자라기 때문에 구조적인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주체와 구조적인 한계를 가진 수목모델이 근대성을 표상하는 반면에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운 리좀모델은 포스트 모던한 세계를 표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수목모델에서 리좀모델로 전환한다는 것은 ‘경직된 조직에서 유연한 조직으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한 ‘다수성의 지배체제에서 복수성의 지배체제로 이동’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리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들뢰즈와 가타리는 제시한 리좀의 여섯 가지 성질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접속(connection): 리좀은 언제 어디서든 아무런 제약 없이 자유롭게 다른 모든 것과 접속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제약에는 전제가 포함된다. 또한 리좀적인 접속의 결과는 항상 새로운 전체를 만들게 된다.
2) 이질성(heterogeneity): 리좀적인 접속에는 어떠한 형태의 동질성이 전제되지 않는다. 또한 리좀적인 접속은 이질적인 것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이질적인 것을 만들어 낸다. 리좀적인 접속을 통한 생성에는 접속 전에 가졌던 어떠한 구조도 안정적인 상태로 남아있지 못하게 된다.
3) 다양성(multiplicity): 리좀모델은 어떤 중심을 통해 하나의 성질이나 구조로 동일화 또는 균일화되지 않는 이질적이고 다양한 것들의 집합이다. 이때 어떤 새로운 하나의 것이 추가되면 모델 전체의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4) 기표적인 파열: 리좀은 들뢰즈가 영토화(territorialization)라고 일컫고 있는 의미작용의 구조들을 내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아울러 리좀은 그 구조들을 파열시킴으로서 탈영토화하는 것들을 또한 포함하고 있어 기표적인 파열(signifying rupture) 또는 평행의 진화(parallel evolution)를 이루고 있다. 리좀은 그것의 근원적인 의미나 기원을 찾지 않고 그것과 분리된 이질적인 것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파열 또는 진화는 리좀이 가진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5) 지도 제작(cartography, 地圖製作): 리좀은 일종의 하나의 지도이다. 따라서 리좀을 형성하는 것은 하나의 지도를 제작하는 것과 유사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것을 ‘지도 그리기’라고 표현하고도 있는 것이다.
6) 데칼코마니(decalcomanie, 영어로는 decalcomania): 데칼코마니는 원래 화면을 밀착시킴으로써 물감의 흐름으로 생기는 우연한 얼룩이나 어긋남의 효과를 이용한 기법으로, 종이 위에 그림물감을 두껍게 칠하고 반으로 접거나 다른 종이를 덮어 찍어서 대칭적인 무늬를 만드는 것과 같은 회화 기법을 말하는 용어이다. 그래서 ‘전사한 도안’이라고도 한다. 들뢰즈가 사용한 데칼코마니는 앞에서 설명한 지도 제작과 관련된 용어로서, 어떤 것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다. 들뢰즈의 데칼코마니는 모사(calque, 模寫, 투사(透寫))를 옮기는 과정에서 대상의 변형이 일어나 이질적인 모작(décalque, 모방, 모작(模作))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따라서 들뢰즈의 데칼코마니는 실제의 현상을 따라서 지도를 제작하기는 하지만, 결과물에 따라서, 즉 그려지는 지도에 따라서 실제의 현상이 변형되는 것을 강조하려는 의도인 것이다.
리좀은 나무의 줄기나 가지, 뿌리와 같이 어떤 결정적인 지점이나 특정한 형태의 구조를 갖지 않는다. 리좀은 고정되어진 주체나 객체로 환원되지 않으며, 접속의 관계를 통해 본성 자체의 변화를 가지게 되는 일종의 ‘다양체(multiplicité)’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리좀은 이미 존재하는 기성의 코드화된 세계에서 생성되고 멈추지 않고 증식하는 새로운 선, 즉 탈주선(une ligne de fuite)이라고 할 수 있다.
들뢰즈의 해석에 의하면 ‘카프카의 글쓰기’는 ‘카프카의 문학기계’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카프카의 작품에 대한 들뢰즈 식의 해석’에 있어 몇 가지 질문을 갖게 된다. 카프카의 글쓰기는 어떤 탈주를 한 것일까. 즉 카프카의 문학기계의 탈주는 어떤 형태인 것일까.
카프카에게 있어 편지는 리좀이다. 그는 편지를 통해 상대방과 접속하고 있으며 관계의 행로를 만들고 있다. 근본적으로 보자면 편지를 문학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카프카의 편지는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카프카의 편지는 비문학적인 텍스트의 집합이지만 카프카의 문학기계를 구성하고 있는 필수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카프카는 편지 쓰기를 통해 다른 세계 또는 다른 사람과 접속하고 있으며 관계의 실제성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카프카는 편지쓰기를 통해 이질적인 관계를 열고 있다. 카프카에게 있어 편지는 리좀인 것이다. 그는 편지를 통해 다른 세계와 접속하고 있으며, 그 세계의 이질적인 것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카프카의 편지는 그의 탈주선의 시작점이고 그것에서부터 카프카의 탈주는 이질적인 것들을 향해 끊임없이 뻗어나간다. 카프카는 편지를 통해 그의 가족, 특히 그의 아버지로부터 탈주하였고, 그로 인해 개인을 코드화하는 모든 체계로부터 탈주한다. 카프카의 편지가 그의 아버지에게 보낸 것에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가부장적인 체제’로부터의 탈주를 찾아볼 수 있으며 연인인 펠리체에게 보낸 것에서는 ‘일상적인 부부관계’에 대한 탈주를 찾아볼 수 있다.
카프카의 편지쓰기는 그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욕망과 접속시킨다. 따라서 카프카는 편지쓰기를 통해 문학기계의 탈주선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의 문학기계의 탈주선이 완성되었더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탈주선을 완성한다’는 표현 자체가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카프카의 탈주는 계속해서 비행하였고 결국 카프카의 문학기계는 단편소설과 장편소설로 변이하여 균일화 되지 않은 이질적인 것들을 생성해낸다. 결국 카프카의 글쓰기는 그의 욕망의 흐름이 그려내는 탈주선의 비행선 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