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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와 다수를 보는 시선: 누가 소수이고 누가 다수인가

소수와 다수를 보는 시선: 누가 소수이고 누가 다수인가


들뢰즈가 말하는 다수(Major)는 자신들의 일정한 코드를 만들어 내어서 그들만의 영토를 확보한 사람들을 말한다. 개념적으로 보게 되면 소수(Minor)와 배치된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사회는 그들 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코드를 기반으로, 그들 다수에 의해 형성된 주류 계층에 의해 운영되고, 그들의 영토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은, 수적 비록 다수라고 할지라도 ‘사회적 소수’가 되어, 다수에 의해 또는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사회적인 소외를 겪게 된다. 


또한 들뢰즈는 ‘다수는 셀 수 있는, 가산 집합’인 반면에 ‘소수는 셀 수 없는, 비가산 집합’으로 보고 있다. 다수는 셀 수 있는 집합이기 때문에 자연수를 차례대로 대응시킬 수 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집단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다수란, 다수라는 말이 갖고 있는 숫자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실제적으로는 자연수로 셀 수 있을 만큼이나 그 수가 많지 않은, 수적 한정되어 있는 사회 구성원의 집단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소수가 셀 수 없는 집합이라는 것은, 소수는 자연수로는 일일이 대응시킬 수 없을 만큼 그 수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고 해도 자연수로 대응할 수 없을 만큼이나 모집단의 크기는 크지 않다. 따라서 이 표현은 사회적 다수에 비해서 사회적 소수가 차지하고 있는 부분이 훨씬 크다는, 숫자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라고 보아야 한다. 어쨌든 소수는, 소수라는 단어에게서 받게 되는 인상과는 달리, 다수에 비해 그 수가 훨씬 많은 사회 구성원을 말하고 있다.      


들뢰즈는 소수 속에서도 또 다른 다수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은 소수에 속하더라도 그 속에서 다시 ‘다수의 코드’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즉 ‘소수 속에서의 다수’로 스스로를 재코드화 하지 못한다면, 결국에는 소수 중에서도 소수인 ‘소수의 소수’가 되어, 소수 중에서 다수의 영토를 확보한 ‘소수의 다수’에 의해 또 다른 형태의 소외를 겪게 된다. 


마찬가지로 다수 속에서도 또 다른 다수인 ‘다수의 다수’가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비록 사회적으로는 다수의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 그 속에서 다시 다수의 코드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다수 중에서 소수인 ‘다수의 소수’가 되어 다수 중에서 다수가 된 ‘다수의 다수’에 의해 또 다른 형태의 소외를 겪게 된다. 


이와 같이 소수와 다수의 개념은 소수가 소수를 또는 소수가 다수를 반복해서 다시 호출하고, 다수가 다수를 또는 다수가 소수를 다시 호출하는 관계인 [재귀적(再歸的) 호출](recursive call)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이 관계는 계속해서 반복하면서 결국에는 자신이라는 개체 하나 만이 남게 되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재귀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결국 이 관계는 오직 자신만이 남겨지는 극한의 상태에까지 수렴하게 되면서 인간은, 스스로가 스스로에 의해 소외되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자기 소외’에 빠지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사회에서의 인간은, 소외를 겪지 않게 될 확률보다는 소외를 겪으면서 살아갈 확률이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이나 월등하게 높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문제점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의 실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부작용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점은 무엇보다 분명한 사실이며, 또한 자본주의에서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회 시스템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이라고 보아야 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사회 시스템은, 그것이 이론의 장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고 해도, 현실의 세상에서 구현되는 과정에서는 미처 예기치 못한 수많은 부작용을 만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소외는 ‘사회라는 인간 집단’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이며,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기에 ‘사회로부터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심지어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을 결코 피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과연 이런 소외가 비단 자본주의와 같이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 시스템으로 인한 문제점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태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가졌었던 모든 현실에서의 사회 시스템들 중에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했던 것은 어떤 것이었던가.”


의문이 질문화된 이것에 대해 답을 찾을 수 없다면, 그래서 머뭇거리게 된다면 또 다른 의문을 가져보아야 한다.  


“인간의 소외는 태초부터 인간에게 내려진 신의 형벌의 일종은 아닌 걸까.”

“혹시 진정한 다수가 된다는 것은, 인간의 영토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물질적인 현상이 아니라. 신의 영토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형이상학적인 현상은 아닐까.”

“인간의 소외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의 불완전성에서 기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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