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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배치와 카프카의 배치에 대한 고찰

들뢰즈의 배치와 카프카의 배치에 대한 고찰


기계들은 서로간의 접속을 통해 선을 형성하고, 나아가 선과 선이 만나면서 면과 면이 형성된다. 여기에서 면을 형성한 이 장(場)이 ‘배치’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배치는 ‘소수-다수 문제’에 대한 들뢰즈 철학의 전략적인 거점이 된다. 

들뢰즈가 설명한 기계와, 선, 면의 개념들과 그 연결 관계는, 점과 점이 하나의 방향을 따라 연속적으로 만나면서 선을 이루고, 최소 세 개의 선이 지나는 곳에서 면(面)을 형성하며, 면과 면이 겹쳐 만나면서 공간(空間)을 만들어낸다는 ‘전통적인 수학적 개념’과 매우 흡사하다. 


이와 같이 들뢰즈가 말하고 있는 ‘기계’는 ‘점’에 해당하는 것이며 점은 모든 개체의 근원적인 요소이기에 결국 ‘존재에 대한 물음’은 ‘기계에 대한 물음’으로부터 출발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들뢰즈의 ‘소수-다수 문제’에 대한 철학적인 거점은 배치에 있지만 그 거점의 뿌리는 장과 장에 배치된 기계들에게 내려져 있다고 할 수 있게 된다.      


배치에는 개체들의 배치, 즉 기계들의 물리적인 배치인 ‘기계적 배치’ 외에도 ‘언표적 배치’가 있다. 

기계적 배치와 언표적 배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축구경기를 예로 들어 볼 수 있다. 축구경기는 축구장이라는 시설에서 선수들과 심판, 관중들이 모여 축구공과 골대를 물리적인 수단으로 정해진 경기 규칙에 따라 승부를 판가름하는 운동경기이다. 

여기에서 ‘축구장’과 ‘선수’, ‘관중’, ‘심판’, ‘축구공’과 ‘골대’ 같은 물리적인 개체 각각들이 하나의 기계에 해당한다. 이때 축구경기 또한 하나의 개체이며, 이는 다른 개체들의 상위에 있는 ‘상위 개체’ 즉 ‘상위 기계’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축구경기를 구성하고 있는 기계들의 물리적인 배치가 바로 [기계적 배치]이다. 


그렇다면 [언표적 배치]란 무엇일까. 축구경기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기계적 배치 이외에도 축구경기를 운영하고 통제하기 위한 경기 규칙이 함께 배치되어야만 하는데 이때 경기 규칙의 배치가 언표적 배치에 해당한다. 

조금만 거리를 두고 이 문제를 바라보면 축구 경기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기계적 배치와 언표적 배치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즉 기계적 배치는 어떤 장(場)에서의 기계 각각에 대한 물리적인 배치를 말하는 것이며, 언표적 배치는 기계들 각각이 조화를 이루도록 통제 및 운영하는 수단의 배치를 말하는 것이다. 이때 언표적 배치를 통해 배치되는 수단은 그 형태가 물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게 된다. 


잠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주위를 돌아보자. 이 세상에는 하나의 장을 별도로 나누어 그것에 속한다고 구분 지을 수 있는 것들(개념적으로 또는 물리적으로)이 셀 수 없을 만큼 늘려있으며, 그 안을 들여가 보면, 어떤 식으로든(그것이 통제이든 운영이든) 조화를 이루어야만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물리적인 기계들이 무수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수많은 장(場)의 집합체이며, 그 안에는 생각하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기계들이 누군가에 의해 뿌려진 듯 마구 흩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기계적 배치들과 언표적 배치들을 통해 결국에는 어떤 조화를 이루게 되는 거대한 공간이며 무수한 시간인 것이다.  

    

이제 카프카의 작품으로 들어가 보자. 카프카의 작품 중심에는 한 사람 또는 한 마리(개 또는 쥐, 벌레와 같은)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가족들 또는 그 주변 인물들이 배치되며, 그(것)들은 어떤 특정 장소(들)에서 특정한 사건(들)에게, 또는 특정하기 어려워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사건(들)에게 엮여져서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카프카의 작품에서 기계는 사람 또는 동물, 의자와 탁자, 거리와 같은 유기체들이거나 무기체들이며 장(場)은 그것들이 거주하거나 놓여서(즉 배치되어서)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집 또는 사무실과 같은 공간과 시간이다.또한 작품의 디테일을 꾸미고 있는 기계들은 서로 간의 접속을 통해 장과 장을 형성하고 있다. 


기계들은 그 장들 각각에서 기계적 배치를 통해 현실화 및 구체화 되어 있으며, 기계들은 사건이라는 언표적 배치를 통해 조화를 이루면서 통제되고 있다. 카프카 작품의 특징은 기계적 배치를 통해 배치된 기계들을 통제하고 있는 언표적 배치가 무엇인가가 어긋난 듯 거북하고 부자연스럽게 보이게 되지만 결국에 가서는 하나의 조화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들뢰즈가 그의 저서와 강연에서 카프카와 카프카의 작품을 종종 소환해서 인용한 것은 결코 우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들뢰즈를 문학적 철학자로 불리게 한 것에는 여러 문학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이 직간접적으로 관여되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카프카와 그의 작품의 역할이 가장 지대하였을 것이라고 여겨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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