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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리좀: 새로운 유형의 관계 맺기

들뢰즈의 리좀: 새로운 유형의 관계 맺기


들뢰즈(Deleuze)와 가타리(Guattari)는 카프카의 작품들을 [리좀(rhizome)이며 굴(窟)]이라고 말하고 있다.


‘리좀’이란 줄기가 뿌리와 비슷하게 땅속으로 뻗어 나가는 ‘땅속줄기 식물’을 가리키는 식물학에서 온 것으로 ‘뿌리줄기 식물’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리고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뿌리줄기 식물이 성장하는 형태적 특성에서 착안하여 ‘리좀’을 그들이 제시한 새로운 형태의 ‘관계 맺기 유형’(리좀모델)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하였다.


또한 들뢰즈와 가타리는 리좀을 자유롭고 유동적인 접속이 가능한 내재적이면서도 배척적이지 않은 잠재성의 관계들의 모델로서 사용하였다. 

리좀모델과 대비되는 모델로는 ‘수목모델’이 있다. 수목모델은 이분법적인 대립에 의해 발전하는 서열적이고 초월적인 관계들의 모델이자 이항 대립적이고 위계적인 관계들의 모델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수목모델과의 대비를 통해 그들이 제시한 리좀모델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바랭이풀과 리좀

리좀은 잡초의 일종인 크랩그라스(crab grass, 바랭이풀)처럼 수평으로 자라면서 자신의 줄기(넝쿨손)들을 방향과 공간의 제약 없이 계속해서 뻗어나갈 수 있으며, 뻗어나간 그 줄기들 각각은 동일해 보이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은 새로운 형태로 자신의 자리를 잡고 자라나게 된다. 

그렇게 자라난 새로운 줄기들은 원래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새로운 줄기들을 뻗어 성장하는 방식으로 ‘정해진 중심(center)이 없고 수직적인 깊이(depth)도 없이 수평적으로 자라면서’ 불연속적인 표면의 형태를 끊임없이 형성한다. 


작은 틈만 있으면 어디든 뻗어 나가기 때문에 ‘폭풍과도 같이 자라난다’라고 표현되고 있는 바랭이풀의 성장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 째로 바랭이풀의 개체수가 작아 공간이 충분한 경우에는, 바랭이풀 포기 각각이 옆으로 옆으로 넝쿨손을 뻗는데 이때 뻗어나간 넝쿨손들이 스스로의 뿌리를 내려 다시 완전한 바랭이풀 포기로 자라나게 되고, 이 바랭이풀 포기가 다시 넝쿨손을 옆으로 옆으로 뻗으면서 계속해서 세력을 넓혀간다. 


두 번째로 바랭이풀의 개체수가 많아서 포기 각각이 충분한 햇빛을 확보하기 어려워지면 그대로 위로 자라서 주변의 낮은 풀들을 뒤덮어버린다. 이와 같은 특성으로 인해 바랭이풀의 이미지를 검색하게 되면 어떤 구역에는 옆으로 덤성하게 키가 낮게 자라난 모습과, 어떤 구역에는 키가 크면서도 빡빡하게 자라난 두 가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좀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대부분의 문헌들이 리좀을 철학적인 용어와 복잡한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좀을, 들뢰즈와 가타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장 강한 생명력’을 가진 바랭이풀이라는 잡초의 성질과 연관시켜 생각한다면, 리좀을 향한 첫걸음이 조금 더 가벼워질 것이다. 


그리고나서 ‘리좀의 원형으로서의 바랭이풀’에서 시작된 걸음을 차츰 철학적 개념들과 용어들을 향해 디뎌나가게 된다면 리좀과 들뢰즈의 철학에게로, 나아가 리좀과 카프카의 문학에게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무튼 바랭이풀이 가진 ‘강인한 생명력’과 ‘성장 특징’을 알게 되면 마르크스주의자인 들뢰즈와 공산주의자인 가타리가 그들의 새로운 사회적 관계모델로서 리좀이라는 모델을 착안한 것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된다. 


   

수목모델과의 대비를 통해 본 리좀모델

수목(樹木)모델은 수직적인 구조를 기반으로 위계와 질서를 세우고 있어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각각의 부분들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들의 발현을 제약하게 된다. 

이와는 달리 리좀모델은 수평적인 구조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위계와 질서로 인해 생겨나는 각종 제약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리좀모델에서는 부분들 각각이 내재하고 있는 가능성들이 자유롭게 발현되어 실제화가 될 수 있다.


리좀은 바랭이풀이 그런 것처럼 하나의 중심을 기점으로 자라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인 구조를 주관하는 특정한 주체가 없으며, 또한 수직적인 깊이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위계와 질서로 인한 구조적인 한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된다. 


수목모델과 리좀모델을 비교하자면, 수목모델은 주체와 구조적인 한계를 가진 수직적인 근대성을 표상한다고 할 수 있으며, 리좀모델은 주체와 구조적인 한계로부터 자유로워 포스트 모던한 수평적인 세계를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 리좀이라는 식물을 그들 식의 관계 모델을 주창하기 위해 도입하였기 때문이라고 전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리좀모델이 그것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뉴욕에서, Dr. Franz 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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