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모델에서 리좀모델로 전환한다는 것은 ‘경직된 조직에서 유연한 조직으로의 이동’과 ‘수직적인 조직에서 수평적인 조직으로의 이동’, ‘다수성의 지배체제에서 복수성의 지배체제로 이동’한다는 ‘변화를 통한 진보적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리좀은 각각이 어떤 하나의 정점을 향해 귀결되는 산(山)의 형상을 갖고 있지 않다. 산을 형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은 리좀에는 봉우리나 정상(Peak)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신에 리좀은 평지와는 완연하게 구별되는 높이와 강밀도를 갖는 고원의 형상을 갖는다. 따라서 리좀은 일종의 고원이라고 할 수 있다. 리좀의 고원들은 바랭이풀처럼 이리저리로 이어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로 수평적으로 연결되지만 어떤 하나의 중심을 향해 모여지는 것은 아니다. 크게 보면 리좀은 고원들의 유연성 있는(fuzzy, 불분명한, 유연성 있는, 경계가 모호한) 집합의 형상을 띠고 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접속과 이질성, 다양성과 기표적인 파열, 지도 제작과 데칼코마니라는 리좀의 여섯 가지 성질(특성)들을 제시하였다.
리좀은 언제 어디서든 아무런 제약 없이 다른 모든 것들과 자유롭게 접속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제약에는 전제(前提, premise,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을 이루기 위하여 먼저 내세우는 것, 추리를 할 때, 결론의 기초가 되는 판단)를 포함하고 있다. 또한 리좀적인 접속의 결과는 항상 새로운 전체를 만들어 내게 된다. 그러한 점이 위계에 의한 질서를 고정시키는 ‘뿌리-나무’와 리좀의 차이점이다.
리좀적인 접속에는 어떠한 형태의 동질성이 전제되지 않는다. 또한 리좀적인 접속은 이질적인 것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이질적인 것을 만들어 낸다. 리좀적인 접속을 통해 생성된 새로운 리좀에서는 접속 전에 가졌던 어떠한 구조도 안정적인 상태로 남아있지 못한다.
결국 리좀적인 접속은 원래의 리좀을 더 이상 동질적인 상태의 것으로 남겨두지 않고, 이질적인 새로운 리좀으로 만드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리좀은 리좀적인 접속을 통해 이질성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리좀모델은 어떤 중심을 통해 하나의 성질이나 구조로 동일화 또는 균일화되지 않는 이질적이고 다양한 것들의 집합이다. 이때 어떤 새로운 하나의 것이 추가되면 모델 전체의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이와 같이 리좀이 가진 세 번째 성질은 다양성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다양성이란 어떤 것에서 동질적으로 분기되거나 어떤 것으로 동질적으로 포섭되는 ‘수목적 다양성’이 아니라, 새로운 요소가 결합할 때마다 크기와 성질 같은 속성의 변화가 일어나서 이질적인 것이 되는 ‘차원의 다양성’을 말한다.
또한 리좀의 다양성은 다양체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리좀의 성질을 이해하기 위해서 <천의 고원>에 나오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문장을 참조해 볼 수 있다.
모든 다양체(multiplicity)는 그것들이 모든 차원을 차지해서 채우고 있는 한 구조적으로 평면적이게 된다. 다양체의 [일관성의 평면](프랑스어에서는 plan de consistance이며 plan을 ‘평면도, 지도, 구도, 계획도’로도 번역할 수 있다.)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관성의 평면은 외재성의 평면(plan de extriorit)이며 ‘책-리좀’을 통해 이것을 살펴볼 수 있다.
책은 체험을 통해 인지한 사건들, 객관화된 역사적인 결정들, 사유를 통해 정제된 개념, 개인과 집단 그리고 사회라는 구성체와 같은 것들을 하나의 단일한 평평한 면 위에 펼친 것이다. 비록 그 내용이 단일 페이지에 기술된 것이 아니라 여러 페이지에 걸쳐 있더라도 결국에는 그것이 모든 페이지를 차지해서 책의 전체를 채우고 있기에 책은 외재성의 평면위에, 하나의 동일한 평면 위에 전체가 펼쳐진 것과 같은, 일관성의 평면을 이루게 된다.
리좀은 들뢰즈가 영토화(territorialization)라고 일컫고 있는 의미작용의 구조들을 내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아울러 리좀은 그 구조들을 파열시켜 그것들로부터 단절함으로서 탈영토화하는 것들 또한 내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이를 통해 리좀은 기표적인 파열(signifying rupture)을 이루어 평행의 진화(parallel evolution)를 이루고 있다.
리좀은 근원적인 의미나 기원을 찾지 않고 그것과 분리된 이질적인 것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파열을 통한 수평적인 진화는 리좀이 가진 하나의 커다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리좀의 다섯 번째 성질은 모상(원래의 상, 母狀)과 대비되는 ‘지도’의 원리에 있다. 리좀은 일종의 지도이다. 하나의 리좀은 한 종류의 지도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리좀을 형성하는 것은 모상과 대비되는 한 종류의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것과 유사한 일이다. 그래서 이것을 ‘지도 그리기’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새로운 리좀을 형성해 내는 새로운 지도 그리기가 단순한 베끼기를 통한 동질의 것을 복제해 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것에 대비된다고 하는 것은, ‘지도가 원래의 것과의 관련성을 유지하면서 실험적인 것을 향하고 있다’는 것에 그 전적인 이유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지도’는 지리적인 표상을 표식으로 나타낸 지침으로서의 문서가 아니라 탈주를 통해 탈영토화를 이루어 낸 것들이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궤적을 나타낸 것이며 그것에 대한 지침의 표식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사유의 지도와 삶의 지도, 전략적 지도와 정치적 지도 같은 것이 여기에 속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또한 기존의 정신분석학은 출구를 찾으려는 무의식의 지도 그리기를 오이디푸스적인 모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석 및 정의하고 있다.
물론 지도의 잉여적 현상으로서의 모상의 역할을 부인하는 것을 반드시 옳은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도 그리기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모상을 통한 의미화와 주체화인가, 아니면 지도를 통한 탈주와 출구 찾기가 지도 그리기를 주도하고 있는가.”와 같이 “지도 그리기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어느 것이냐.” 라는 문제이다. 지도는 지도 그리기라는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기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지도 그리기를 주도하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문제는 최종적으로 형성되는 지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대해 들뢰즈와 가타리는 “모상이 지도 그리기를 주도할 때는 지도로부터 재생산해 내는 것은 오직 막다른 골목과 봉쇄, 중심축의 씨나 구조화의 점일 뿐이다.”라고 얘기하고 있다.
데칼코마니(프랑스어로는 decalcomanie, 영어로는 decalcomania)는 원래 화면을 밀착시킴으로써 물감의 흐름으로 생기는 우연한 얼룩이나 어긋남의 효과를 이용한 기법을 의미하는 용어로서, 한 장의 종이 한쪽 면에 그림물감을 두껍게 칠한 것을 반으로 접어 찍어서 대칭적인 무늬를 만들어 내거나, 어떤 종이 위에 그림물감을 두껍게 칠한 다음 다른 종이를 그 위에 덮어 찍어서 동일한 무늬를 복제하는 것과 같은 회화 기법을 일컫는 용어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데칼코마니를 ‘전사(轉寫)한 도안(圖案)’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르고 있다.
들뢰즈가 사용한 데칼코마니라는 용어는 앞에서 설명한 지도 제작과 관련된 것으로서, 들뢰즈는 어떤 것을 단순히 복제하거나 재현하는 것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데칼코마니라는 영어를 사용하였다. 들뢰즈의 데칼코마니는 모사(calque, 模寫, 투사(透寫))를 옮기는 과정에서 대상의 변형이 일어나 이질적인 모작(décalque, 모방, 모작(模作))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들뢰즈의 데칼코마니는 원래의 것을 따라서 지도를 그리기는 하지만 그려진 지도는 원래의 것에 변형이 일어난 새로운 이질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사용한 것이다. 즉 하나의 리좀이 탈영토화를 통해 다른 리좀으로 재영토화가 이루어지면, 그 새로운 리좀은 비록 원래의 리좀을 기반으로 그려진 것이라 해도 결국에는 변형이 일어난 이질적인 새로운 것이 된다.
뉴욕에서, Dr. Franz KO(고일석, Prodessor(former), Dongguk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