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스트들은 그들이 살아가던 시대와 화합하지 못했고, 그들이 존재하던 사회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으며, 국가와 종교를 포함하여 그들 당대에 존재하던 모든 사회적 시스템과의 화합을 거부했던 사람들이자, 오직 인간의 자유의지를 추종하며 살아간 ‘순수하게 자유로웠으며, 진정으로 자유를 사랑했던 자유인들’이었다.
그렇게 '시대의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극히 소수의 사람들을 아나키스트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소수의 소수’에 자기 스스로를 배치한 사람들이었다.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 시스템과 맞서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나키스트의 운명이자 사명이었기에 그들은 정치체제나 종교체제와 같은 어떠한 사회적 시스템과도 결코 화합할 수 없었다.
정치적으로 본다면, '우익'의 관점에서는, 시대상에 따라서는, 아나키스트가 '좌익'처럼 보이기도 하였지만 순수한 아나키스트는 결코 ‘완전한 좌익’이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젊은 시절에는 ‘순수 아나키스트’의 행보를 걷다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선동에 익숙한 좌익 정치가' 또는 '대중주의적인 좌익 사회운동가'로 변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순수 아나키스트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변화를 ‘세상과의 기울어진 타협’ 또는 ‘사상의 변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좌익 정치가들은 아나키즘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시늉’만을 했을 뿐 애초부터 아나키즘의 이상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을 수 있다.
그런 류의 사람들 중에는, 대놓고 ‘그’라고 말하기는 뭣하지만, 후일에 ‘그’의 이름만으로도 하나의 '아이콘'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우상화된 그런 류의 인물도 있다.
세상과 타협의 길을 걸으며 권력을 추구했던 그런 ‘변절한 아나키스트’로 인해 '아나키스트는 무정부주의자‘를 말하는 정치적인 용어라는 인식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를 ’정치 아나키스트‘라고 표현하는 문헌이 있는데, 그는 단지 ’아나키스트의 무늬를 걸친 정치인‘이거나 변절한 아나키스트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안타까운 것은 모든 변절은 '자기변명'과 '타협'이 '세월의 변성 작용'을 거치면서 생성된 결과물이지만 막상 '변절자'인 그 자신은,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그것을 숙성작용에 의해 생겨난 '사상의 전이' 또는 '신념의 변이' 정도의 가벼운 것으로 여기도 있다는 점이다.
타인의 변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강한 비판을 일삼았던 그들에게 자기 합리화는 자신의 변절에 대해 '자기 망각'을 일으키는 강력한 환각제이자 주술사의 묘약이었던 셈이다.
이상세계에서나 존재하는 유토피아가 아닌 다음에는, 아나키스트가 맞서 싸워야 할 체제와 세력은 어디에나 늘려있기 마련이고, 언제나 그런 것들이 주변에 산재해 있기에 진정한 아나키스트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 어디에서나 그것들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기존의 사회적 시스템에 불만을 가지고 반항을 일삼는 ‘사회의 부적응자로서 사회적 불안 요인'으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철학과 과학을 통해 무수히 흩어져 있는 정신적인 것들과 물질적인 것들 속에서 일정한 규칙과 체계를 찾아갈 수 있듯이, 진정한 아나키스트의 대립과 반항에서는 잘 갖추어진 규칙과 질서정연한 체제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만약 이러한 것들을 더듬을 수 없는 이라면 ‘사회적 불안만을 조성하는 목적’으로 아나키즘을 이용하고 있는 [천한 아나키스트] 또는 [사이비 아나키스트]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나키즘(anachism)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인간의 삶을 통치하는 정부나 권력의 부재(不在)’를 뜻하는 'an archos'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근래에 와서 아나키즘을 ‘국가가 없는 사회’, 즉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인 [루이 아르망 드 라옹탕](Louis Armand de Lom d’Arce, baron de Lahontan, 1666 – 1716)이다.
그는 프랑스의 사회 철학자인 프루동(1809-1865)보다 약 백 오십 여년 앞서 아나키즘이라는 개념을 공식적으로 사용한 사람이다.
당시 오늘날의 캐나다지역인 북아메리카에 주둔했던 프랑스군의 장교였던 그는 현재 미국의 영토인 위스콘신 주와 미네소타 주, 미시시피 강의 상류 지역을 광범위하게 여행하며 겪었던 경험들을 토대로,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생활을 기술한 책 《New Voyages to North America》(Published in two volumes in 1703, 프랑스어 《Nouveaux Voyages de M. le Baron de Lahontan dans l’Amérique Septentrionale》로 먼저 발간되었고, 같은 해에 영문으로 번역되어 발간되었다)을 1703년에 발간하였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이 책에서 아나키즘을 '국가가 없는 사회'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결국 루이 아르망 드 라옹탕이 ‘아나키즘 = 무정부주의’라는 등식을 제공하는 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무정부주의’는 당시의 인디언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것일 뿐, 근래에 와서 말하고 있는 ‘무정부주의’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당시 순수하게 자유로웠을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생활과 삶을 떠올려 보면 “자연을 어머니로 여기며 자연에 순응하고, 오직 자연의 규칙만을 찾아가며, 그 자연 속을 자유롭게 활보하며 살아간 인디언들의 삶이 아나키즘적이다.”고 보았던 루이 아르망 드 라옹탕의 시야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전통적인 관점에서는 그러한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삶을 완전하게 아나키즘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수도 있다.
그것은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아나키즘은 ‘국가 정부와 법률 같은 사회시스템이 없으며, 정치인이나 종교 사제(司祭, 성직자)와 같이 개개인을 통제하는 자가 없으며, 감옥이나 개개인이 소유하는 재산이 없는 사회’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아나키즘은 ‘개개인의 자유’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그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모든 사회적 시스템을 부정하고 이에 항거하는 일종의 사회철학이자 정치이념인 것이다.
이와 같이 ‘개개인의 극단의 자유 추구’라는 아나키즘의 행동 방향으로 인해 많은 경우 아나키즘이 ‘무정부주의적인 혼란’이나 ‘무체제주의적인 무질서’와 연관되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