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그는 어릴 시절부터 유독 글자가 박혀있는 것들을 좋아하였다. 틈나는 대로, 손에 잡을 수 있는 그것들을 닥치는 대로, 누런 종이 위에 검게 박힌 활자 훑어 내리기에 하루가 저물어가는 줄도 모른 채 빠져들곤 했다. 글자가 박혀 있는 종이 뭉텅이를 흔히 책이라고 부르니, K가 읽어 내린 것들을 책이란 통칭으로 묶더라도 크게 어색치는 않을 것 같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또래의 여느 사내아이들처럼 동네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 가살궂은 개구쟁이였지만, 가끔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더 자주, 그 또래 놈들에 비해 생각이 많고 꼬박꼬박 논리란 것을 달아 말대구하는 버릇으로 인해, 동네 어른들로부터 ‘애 늙은이’ 같다는 얘길 듣기도 하였다.
그저 그런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도토리 키 재기 하듯 앞서서 가거니 뒤를 따르거니 하면서 모여 살아가는, 도시 끝자락에 살짝 물려 있는 어수룩한 동네의 어귀에 박혀 잡은, 연회색 슬레트 지붕 집 첫째 아들이었던 그에게, 책이란 건, 아니 글자란 건 닥치는 대로 읽어줘야만 하는 의무이자 유희였지만, 어쩌면 집안 형편 모르는 철없는 아이의 호사질이었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것은, 출구를 찾기 어려운 현실에 조금 더 일찍 눈을 뜬 어린 아이가 찾아낸 도피처이자 유영지였으며 스스로가 높이 쌓아 올린 울타리였던 것 같다.
탐독한 책의 권수만큼 일기장 또는 기록장에 끌쩍여 낸 분량 또한 늘어갔다. 그 끌쩍임이란 것이 그냥 하루 삶의 흐름을 어쭙잖은 현학을 섞어 내려 담은 포장된 신변잡기의 형태인 것도 있지만, 머리와 가슴이 지어내고 거기에 형이상학을 빌어 치장한 망상의 산물이거나, 어떤 주제에 얹어 말장난 줄줄 엮어낸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엉성한 운문이거나, 불규칙적인 형태의 변덕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하소연이거나, 스스로의 감상을 훔쳐 길게 그려낸 연작 산문의 형태였던 것 같다.
원래 누군가의 삶이란 걸 돌이켜 볼 때, 그것이 자신에 대한 것이라 해도, 통통하게 살 집 좀 붙여 넣고, 값 싼 렌즈라도 끼워 눈 빛 좀 더 초롱초롱하게 만들어 주면 자세조차 그럭저럭 보기 좋게 잡히기 마련이다.
그가 살아 온 방식이란 걸 굳이 그럴싸하게 얘길 하자면 세심하게 주위를 살피고, 그가 가질 수 있는 생각의 범위 내에서 분석하고, 그것을 텍스트에 담아 정리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후일 그는 이것을 ‘사물 읽기’ 또는 ‘세상 읽기’, ‘사람 읽기’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아주 어릴 적부터 스스로 지어낸 혼자의 버릇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방식이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는 잘잘못을 따지는 일 따위는 무의미할 뿐이다.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었고 어찌어찌 K는 여기까지 와있다. 돌이켜보면 일찌감치 부터 K는 무수한 텍스트들을 바탕으로 밥을 벌어먹을 운명이었던 것 같다.
뉴욕에서, Dr. Franz Ko(고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