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l, K의 한 때

Novel, K의 한 때

“Novel이란 뭔가 새롭다는 어원적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이다.”


K는 오래전,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운 좋게 몸뚱이를 빼낼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K의 인생에서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3시절까지, 생각하기조차 싫은 K의 학창시절 거의 대부분은 끈적거리고 불유쾌한 냄새로 가득한 검은 늪 구덩이를 벗어나려했던 허우적거림만을 기억에 남겼을 따름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3이란 그 한 해는, K에게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웠던 시간의 연속이었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하필이면 그 중요했던 시절에, 의도한 것은 결코 아니었음이 틀림이 없었겠지만, 책임감 없는데다가 못나기까지 한 서방을 대신해서 자식새끼 넷의 생계란 것을 담당하던 어미에게 갑작스레 닥친 뇌졸중은, 8시간의 대수술을 거친 후에, 다행이 깨어나긴 했지만, 몸뿐만이 아니라 정신까지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린 채 하루라는 시간 내내 누군가의 수발을 필요로 하게 되어버린 일가의 몰락을, 어떻게든 견뎌야만하게 만들었다.


참고서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채 근근이 고3이란 시간을 버티며, “인간의 삶에 있어, 신이란 게 있긴 하다면, 더 이상은 나빠질 게 없을 거야.”라는 문장을 주문처럼 외며 스스로를 위안하며 지내던 K에게 떨어진 청천벽력 같은 그 일은 결국 신의 존재를 철저하게 부정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신은 그 어느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은 비극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옛날이야기는 그저 호사가의 말장난일 뿐이지 결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을 K는 그렇게 원치 않는 일들을 통해서 익혀가고 있었다.

원래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함을 생물학적 팔자로 타고났음에도 이미 오랜 시간 동안을, 기억 상 K가 초등학교에 갓 들어간 시절부터, 딴 여편네 문지방을 기웃거리며, 직업이란 걸 계집들과 살림 차리듯 갈아타며 무위도식을 일삼았던 아비라는 사람과.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스물이 되기 전에 돈을 벌어 부모를 봉양하라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온 누나들의 성화는, 그 시절의 K가 견뎌야만 했던 채찍질과도 같았다. 아비나 어미나 누나들이나, 가족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K를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시킬 생각이 없었느니, 그런 가능성은 손톱 밑에 낀 작은 때만큼도 없는 상황에서 K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것은,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어린 K가 피운 질긴 고집 덕분이었다.


K는 알고 있었다. 가난하기 하지만 참고서조차 못살 형편까지는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제 욕심에 대학가려 한다,”는 가족들의 따가운 눈총을 가까스로 견디며 지내고 있던 K였기에 “고3때는 참고서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참고서를 사야한다.”는 말은, K의 입 안에 봉인해 두어야만 하는 금기어와 같은 것이었다.


책임 없고 철없는 아미와 어미, 누나들이 쏟아내는 성화에 더해진 하나 뿐인 남동생이 만들어내던 사고의 소란까지 견디어가며, 우여곡절 끝에 그럭저럭 진학한 대학 캠퍼스 한 구석에서 K는, 고 3시절 만들었던 단어장과 노트 몇 권의 여백에, 여섯 개의 각을 가진 기둥 중간 위쪽 부분 중간 쯤, 낙타 한 마리가 검게 음각으로 새겨진 검정색 모나미 펜으로, 소설이라 여겼던 걸 긁적거리며 지냈다.


그러다 어느 날 소설의 본질이란 것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원래부터 K는 궁금증이 많은 성격이었다. 글쓰기에 적당한 간격으로 애초부터 연하게 그어 놓은 실선의 간격을 무시한 채 'Novel' 이란 영어 단어와 '소설'이란 한글 단어를 큼직하게 채워 넣고는, 눈이 시릴 때까지 뚫어지게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한참을 빤히 들여다보니 앞 장 어디쯤, 질 나쁜 종이에 배어 있던, 쓰다 멈춘 기억 속 얘기가 뒷장의 표면 위로 삐죽삐죽 베어 나오는 것 같았다.


세월이 흘렀지만 K에게 그 이야기는 언제나 지금의 현실처럼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것은 한 사내와 차원에 대한 것이다. 0차원에서 4차원까지, 차원을 넘어서며 살아가는 한 사내의 이야기를 그 시절의 K는 망망하게 그려내고 싶었다. 그 얘기 속에선 시제가 하나일 뿐이다. 분명 과거의 일이란 것이 분명한 것에 대해서도 '였다'라는 과거적 시제보다는 '이다'라는 현재적 시제를 사용하였다. K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그 사내의 이야기가 아마도 특정 차원을 이미 넘어섰기 때문일 수 있고, 어쩌면 어느 차원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 차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따라서 K의 그 이야기는 시제의 혼동이라든가 비시제적이라기 보다는 초시제적이라고 적당히 얼버무리며 넘어가려는 자가당착적 위안과 '자유차원'이란 범위 넓은 해석으로 당위성을 부여해야만 할 것 같다.

소설을 Novel이라 표기하고 보니 “소설의 본질이란 게 독자들이 원하는 뭔가 새로운 얘깃거리를 제공하는 것에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독자라는 말이 단지 대중 독자를 의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소설을 쓰고 그것을 출판한다는 게 다분히 대중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몰이 쇼와 같은 것이어서, 저급한 표심구걸이거나 막장 드라마의 시청률 경쟁과 같이 자리 수에 연연하는 숫자놀음이며, 결국에는 늘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다니며 독자의 입맛에 쫙쫙 붙는 ‘선동적 이야기를 제공’하는 중독성 강한 수단이며 도구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K가 쓰던 소설이라 여겼던 글 나부랭이가, 문학으로서의 고귀함이나, 인간의 실존적 문제 해결을 추구하고 있다는 핑계를 방패막이로 삼는다면, 또 다른 새로움을 찾고 있는 ‘스스로라는 독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자기만족 찾기일 수도 있어 보였다. 그러면 소설에 있어 대중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K 혼자만을 독자이자 대중이라 여기자니 종국에는 커다란 공허의 블랙홀에 빠져들어 갈 것만 같은 두려움이 깜깜한 칠흑의 밤처럼 눈앞을 검게 막아섰다.


결국 K는 그즈음에 제법 틀을 잡았던 소설이 아닌 것 같지만 소설이라 생각한 글쓰기를 멈추고 험난했던 고3 생활과 거친 파릇함이 넘쳐나는 캠퍼스의 삶을 기록하던 단어장과 노트를 찢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K가 한 때나마 Novel이라 여겼던 그 글에선 새로움이란 걸, 적어도 당시의 그는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뉴욕에서, Dr. Franz Ko(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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