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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란 무엇인가, 기억의 진정성에 대해

기억이란 무엇인가, 기억의 진정성에 대해                   


첫 번째, 기억이란 것에 대해

인간은 자신이 경험하고 익힌 것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지극히 주관적인’ 존재이다. 하지만 스스로는 자신의 주관이 ‘사회적인 객관’이라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 아주 이기적인 존재이다. 

인간이 가진 이러한 성향에 대해서는 인류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나 의학적으로 다양한 분석들과 설명들이 이루어져 왔지만 여기에서는 기존의 것들과는 다른 접근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종류의 삶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 사례 기반의 삶(경험 기반의 삶): 자신의 경험들(겪어 온 일들)을 바탕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식을 ‘사례 기반의 삶(Cases based Living)’ 또는 ‘경험 기반의 삶(Experiences based Living)’이라고 할 수 있다.


• 규칙 기반의 삶(주제 기반의 삶): 자신이 정해 놓은, 또는 이미 생성된, 주관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규칙들을 생성하며, 그것들을 기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삶의 방식을 ‘규칙 기반의 삶(Rules based Living)’ 또는 ‘주제 기반의 삶(Subjects based Living)’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겪어온 경험과 그것을 통해 형성한 주관을 바탕으로 나름의 규칙과 주제를 찾아내어 그것들을 잣대로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그 판단의 결과로 인해 얻게 되는 ‘새로운 사례’ 또는 ‘변형된 사례’와 ‘수정된 경험’을, 규칙 또는 주제로 생성하거나 갱신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 α ――――――


삶에서 얻어지는 경험은 지각의 인지 작용을 통해 기억의 저장소 어딘가를 차지하게 되고 어느 날엔가는, 어떠한 형태의 격발 작용으로 인해 그 저장소에로부터 벗어나서 자신과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게 된다. 

일단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하게 된 경험은 인간의 삶이 걸어가는 여정을 동반하면서 ‘스스로를 위한 자기변명’을 일삼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변형이 생겨나게 되어 결국에는 이렇게 변형된 경험을 ‘객관(Object)적인 것’이라고 여기고 믿게 되는 ‘지극히 주관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객관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고 자기변명이 만들어낸 스스로의 보호(또는 방어) 장치인 것일까.

어느 한 존재에 있어 기억의 객관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기억 속에서는 객관이란 것이 있는 것일까. 

인간의 기억이란 객관적인 것의 저장소일까. 

기억이라고 믿고 있는 그것은 그날, 그때, 그곳에, 진정으로 실체했던 것이 나의 머릿속에 남겨진 것일까. 


어쩌면 그 자리에 있었던 것과 있었을 것 같은 것, 있었었기를 바랐던 것이 뒤엉킨 채 혼재된 ‘왜곡된 지나간 것’을, 시간 지난 지금에 와서야 애써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려는 것은 아닐까. 


밤하늘에 박혀있는 별들보다 더 많은 기억들과 그것들이 뿌려놓은 무수한 파편들 중에서, 꼭 집어내어 ‘진정으로 객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어쩌면 어떤 기억과 그것에게 가해지고 있는 먹먹하기 그지없는 행위(또는 작용)들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고안된, 고도로 정교한 정신적인 장치의 일종은 아닐까.  


        

두 번째, 기억, 마법의 성

채색과, 왜곡과, 망각은, 인간의 기억이 소유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속성들(Attributes)이고 그것이 일으키는 각종 작용들은 인간의 기억 장소를 매개체로 행해지는 방법적인 행위들(Methods)이다. 

적절히 채색된 기억은 왜곡의 과정을 통해, ‘그렇지는 않았지만 그때 그 자리에 있었으면’하는 것이 결국에는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변형된 객관적인 추억’이 되고, 망각의 작용이 가해진 기억은 새로운 채색을 입어 ‘재탄생된 객관적인 추억’이 된다. 

그 채색은 기억의 시점과 장소에 따라 다른 색을 올리기도 하기에 기억에 대한 객관은 가변적이면서 성장과 소멸의 과정을 밟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자신의 기억에서의 객관이란 것은 지각의 인지적인 경험을 통해 생성되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주관적인 정신작용이 더해져서 형성된 ‘재탄생된 추억’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 기억에게 ‘진정성이 전혀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있어 스스로의 기억은 늘 진정한 것이고, 그러기에 인간의 삶이 진정해지는 것이다. 


기억이 진정성을 유지하려고 애를 쓰고 있을 때 그 기억은, 비록 그것이 한 인간의 주관이 재탄생시킨 것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하더라도, 객관적인 것이 되며 그것을 통해 그 인간의 삶 또한 진정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에 있어 객관성은 진정성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게 된다. 

시간의 산화작용은 그곳에 있었던 기억을 변화시키려 하지만, 꿈에서든 최면 속에서든, 일상 속에서든, 기억의 객관은 늘 기억의 진정성을 영속적으로 유지하려 애를 쓰고 있다. 


―――――― α ――――――


기억, 마법의 성     


기억이란 건 

거기에 있었으면 하는 

담고 싶었던 것들의 

흐린 저장소이다  

   

보고자 했던 것들과 

남기고자 했던 것들과, 

실체 없는 미망들이

거기에 더해지거나 빠져서

채색이란 미명 아래 

왜곡의 변명을 방조한다 

    

이미 여위어버린 어깨와 

횅한 눈의 어색한 웃음을 

이젠 어쩔 수 없다


그곳은 마법의 성이다


결코 결계가 풀어지지 않을 것 같은 

지독한 마법에 걸린 성이다 

    

성문 앞에 버려진 우물가에는 

찬바람에 먼지가 쌓이고 있고 

회백의 성벽에는 

마른 이끼가 자욱하게 기어오르고 있다  

   

인간의 기억은 

저 편에 있는 것 같은

저 편에 있을 것 같은

저 편에 있었으면 하는

자욱한 안개에 갇힌 마법의 성이다     


뉴욕에서, Dr. Franz Ko(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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