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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 인간이란 무엇인가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유야 어찌 되었건 애초라 불리는 아주 오래전, 또는 태초라는 이름을 붙인 더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 온 것들에게, 언제인가부터, ‘이것’ 또는 ‘저것’이라는 특정한 이름이 붙기 시작하였고, 이 같은 세속적인 행위에는 ‘교만’과 ‘왜곡’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잔재주가 작용하였음이, 불은 뜨거운 것이라는 사실만큼이나, 분명하다. 


굳이 위대한 철학자 누군가나 어느 유명한 사상가의 견해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善)한 면과 악(惡)한 면을 한꺼번에 갖고 태어난 아주 변덕스럽고 양면적인 존재이며, 또한 후천적으로 좀 더 선해질 수도 있고 또는 좀 더 악해질 수도 있는 여지가 있는 미완성된 존재이다.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면들은 ‘변화할 수 없는 결정적인 것’만은 아니어서 환경과 사고, 행위와 같은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개인화된 형태로 발현되며, 결국에는 그것에 의해 삶이 나아가는 방향이 정해지게 된다. 

따라서 한 사람의 선함과 악함은 그 또는 그녀에게 선천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흑과 백의 논리를 기반으로, 후천적인 요인의 영향을 통해 그 농도가 짙어지기도 옅어지기도 하며, 이리로 휩쓸리어 가기도 하고 저리로 밀려가기도 하는 것이다. 


―――――― α ――――――     


인간은 태초 '재료의 혼돈(케이아스, chaos, 카오스)'에서 야기된 사고의 혼돈 속에서 인식의 씨앗을 뿌리며 살아왔다. 

인식(認識)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알아차리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결국 ‘인간의 알아차림’이라고 할 수 있다.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오래전에 그 씨앗에서 줄기가 자라났고, 그 줄기에서 가지가 솟아났으며, 가지마다 잎과 꽃이 피어서 각종 열매를 다양하게 맺어왔다. 

또한 줄기와 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를 지탱하면서 땅 안으로 향한 뿌리는 점 점 더 깊숙한 곳으로 뻗어나가서, 흔들림 없는 태초의 대지로부터 정신계의 양분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한 기반 위에 사색이라 불리는 ‘세상과 인간의 근원 알기’가 하늘을 향해 뻗어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논리와 체계가 갖추어진 사색의 진화는 문명의 진화와 진보를 끌어가는 중심 동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세상은 지난 시간을 살아간 수많은 인간의 사색이 이루어낸 커다란 장이다.   


―――――― α ――――――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의 숙명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사색을 통해 제공된 동력은 ‘무엇을 생각하란 것인지’와 ‘어떻게 생각하란 것인지’, ‘왜 그런 것인지’를 추적하려는 시도를 통해 인간 자신의 존재를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케 하였다. 


‘생각하기에 아주 능한 무리’, 즉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의 출현을 단지 돌연변이의 결과물이라고 하게 되면 인간의 영적인 면에 대한 탐구가 너무 허술해 보일 것 같다. 


생물학이나 고인류학에서 사용하는 학명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이다. 라틴어에서 ‘아는 것’을 뜻하는 sapere를 어근으로 하고 있는 사피엔스(Sapiens)는 ‘아는 이’, 즉 ‘현명한 이’를 나타내는 단어이다. 이에 대해 영문 원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Sapiens is a Latin word meaning ‘one who knows’ (Latin: sapere = to know)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라는 두 번의 사피엔스가 붙여진 인간 무리에 대한 학술적 명칭에서, 인간을 지구상의 다른 동물처럼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세포들의 기능적인 집합체’라고 보고 있는 또 다른 학문과의 커다란 간극을 발견하게 된다. 


얘기하는 이에 따라서 인간은 영적인 존재가 되기도 하고 생물학적인 존재가 되기도 한다. 

둘 다가 맞는 얘기 같아 보인다. 

누군가에게 어느 하나만을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그 또한 호모 사피엔스사피엔스이기에, 틀림없이 주저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주저하는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인간을 영적인 존재라고만 믿기에는 어딘가 모를 공허함이 끼어들 것 같고 생물학적인 존재라고 인정하자니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심히 허무해질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은 생물학적인 존재이자 영적인 존재라는 것에서 스스로를 위안하게 된다. 

이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도 미완성되었으며 영적으로도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가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지는 것, 결정의 순간 생각의 끝을 자르지 못하는 우유부단함, 한 번 내린 결론을 수시로 바꾸는 변덕스러움, 이것들은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것을 인정하고 이것에 대해 사색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학문인 것이다.   


뉴욕에서, Dr. Franz Ko(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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