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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하늘을 난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

다이달로스, 비행의 꿈을 이룬 최초의 지상인  

                           

새의 깃털로 만든 날개를 어깨에 단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는 함께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날의 비행으로 인해 다이달로스는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이카로스를 잃게 되었지만 미궁 라비린토스의 탈출이라는 원래의 목적은 이루어 낸 것이다. 


그렇다면 다이달로스의 비행을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에 따라서는 비록 목적한 바가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성공’이라는 표식을 붙이기 어려운 것이 있다. 

그날 다이달로스가 해낸 것 또한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결과적으로 그의 비행은 ‘절반 또는 그것에 못 미치는 성공’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다이달로스가 만든 날개는 날아오르는 것에 실패했어야만 했다. 

만약 그날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가 하늘을 날아오르지 못했더라면 다이달로스는 좀 더 시간을 갖고 날개를 보완했을 것이고, 날개의 제작에 사용된 재료 상의 문제로 인해 이카로스가 사망에 이르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랬더라면 이후에 미궁 라비린토스를 성공적으로 탈출한 그들 부자는 동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결말처럼 ‘행복하게’ 여생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실패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살아보면 몸과 영혼으로 알게 된다. 

사람은 실패를 겪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실패를 이겨낸 성공이야말로 단단한 반석 위에 지어진 튼튼한 저택과 같이 세찬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실패를 겪어보지 않은 실패는, 단 한번만으로도 치명적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단 한 번의 실패만으로도 파멸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게 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패를 겪는다. 

실패는 인간의 숙명이다. 

신은 인간에게 ‘실패’와 그것을 통해 성장하는 법을 함께 제공하였다. 

실패하면서 배우라니, 이 얼마나 잔인한 형벌인가. 

이것은 또 다른 버전의 시시포스의 신화일 수 있다. 

이 버전에서는 끝을 알 수 없는 형벌을 받고 있는 주인공이 시시포스가 아니라 바로 나와 우리인 것이다. 


어찌되었건 인간은 실패를 겪으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만약 앞선 실패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았다면,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더 나쁜 일이 될 수 있다. 

신은 그런 이에게 더 큰 형벌이 내린다. 

이 이야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카로스의 죽음에는 다이달로스의 실패와 그것을 대하는 그만의 성향이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α ――――――     


그날의 비행에 대해서는 오직 단 한 번의 비행만이 기록으로 남겨져 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카로스는 그날 땅으로 추락하여 죽었으니 더 이상 날 수 없었고 다이달로스는 자신의 부주의와, 자신이 만든 날개의 구조상의 문제점으로 인해 하나 뿐인 아들을 잃고 말았으니 더 이상 하늘을 날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의 사건으로 인해 다이달로스에게는, 날개를 만들거나 하늘을 난다는 것이 지울 수 없는 깊은 트라우마가 되어 가슴에 새겨졌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 단 한 번의 비행으로 인해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는 하늘을 날겠다는 인간의 꿈을 이루어낸 최초의 지상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인간이란 원래 부족함이 일상인 존재이기에 그들의 비행에서 엿보이는 부족함 따위는 그리 개의치 않아도 될 것 같다.


아무튼 땅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지상인(地上人)인 다이달로스가 하늘을 날았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날의 비행에 대해 기록을 남긴 고대인 누군가의 행위는, 후세에 와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또 다른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이에게 커다란 영감을 안겨 주었음이 분명하다.

 

―――――― α ――――――    


이 이야기에서 관심을 두고 살펴야 할 점은 '인간이 하늘을 날았다는 것'이다. 

만약 다이달로스가 신이었다면 ‘신이 하늘을 날았다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거나 기록으로 남겨야 할 만한 대단한 사건이라고 하기는 어렵기에 부연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게 된다. 

원래 신은 하늘을 제 맘대로 날아다닐 수도 있고, 바다 위를 제 맘 내키는 대로 걸어 다닐 수도 있고, 땅속 지하 세계를 제 하고 싶은 대로 돌아다닐 수도 있는 신묘한 재주를 가진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신’이라는, 모든 것으로부터 초월한 존재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날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다이달로스라는 한 탁월한 인간의 성공으로 인해 “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다양한 해석을 통해 과학과 철학과 문학과 예술의 자양분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있다. 

 

다이달로스의 날개 이야기에는 또한 인간의 교만을 경계하는 날카로운 경고 장치 또한 갖추어져 있다. 

그런 점에서는 다이달로스의 이야기와 이솝이 남긴 우화들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이 나이가 들수록 더욱 신화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신화에는, 살만큼 살아봐야만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우화와도 같은 요인이 그 속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 α ――――――     


하늘을 날아 자유를 얻은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에게는, 잘 알려져 있는 것과 같이 비극적인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비의 경고를 무시한, 또는 잊은 젊은 이카로스는 점점 더 높이 날아올랐고 결국에는 태양에 가까이 다가갔다. 

태양의 뜨거운 열기는 새의 깃털을 붙였던 밀랍을 녹여버렸고 이로 인해 새의 깃털은 날개에서 떨어져 나갔다. 

결국에는 이카로스가 하늘을 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날개의 깃털이 그를 바다에 추락시키게 된 것이다.           

‘하늘을 나는 이야기’에는 극적인 전개와 비극적인 결말을 통해 일종의 경고를 담고 있는 경우들이 있다. 

그리스 신화 중에 파에톤(Phaethon)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파에톤은 아비이자 태양신인 헬리오스(Helios)의 마차를 너무 높게 또는 너무 낮게 몰아, 지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고 또한 그런 철없는 행동으로 인해 땅이 말라버리게 되자 이에 노한 제우스가 던진 벼락에 맞아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카로스의 날개 이야기와 파에톤의 마차 이야기는 상당히 닮아 있다. 

두 이야기에서 기성세대에 해당하는 아비는 아들에게 그의 능력과 배경을 물려준 존재이고, 젊은 아들은 아비가 물려준 것들을 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비의 현명한 처신과 경고를 무시하다가 급기야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저지르고야 마는, 무척이나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가져 볼 수 있다. 


“잘 나가는 아비를 둔 자식들은 모두 교만하고 어리석기만 하단 말인가.”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 주제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간이 일단 하늘을 날아 보면, 어느 한 순간, 이성을 잃게 되는 일이 문득 생겨나기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늘에서는 땅에서는 알 수 없는 어떤 무모한 도전 의식이 불쑥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을 두고 젊다는 것이 충동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는 것과, 자신의 행위에 대한 관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에 의한 위험의 감내’라는 ‘젊음의 능동성’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난날들은 돌이켜보면 젊은 시절에는, 비록 젊은 이카로스처럼 땅에 떨어져 죽지는 않았지만 나 또한 타인들처럼, 무척이나 충동적이었고 도전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모하기만 했다거나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분명한 것은 젊은 시절의 나 또한 나임이 분명하지만 지금의 나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 다른 지를 기술하라고 한다면 우물쭈물거리게 될 것 또한 틀림없다. 


다이달로스는 그의 삶을 살아간 것이고 이카로스 또한 그의 삶을 살아간 것이다. 

시간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있어 인간의 물리적인 삶은 참으로 보잘 것 없어 보인다. 한 인간의 삶이 길었다는 것과 짧았다는 사실은 시간에게는 의미가 없다. 

이 이야기는 <이카로스의 날개 이야기>로 알려져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궁금하다.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누구의 삶이 더 긴 것인지를. 


뉴욕에서, Dr. Franz Ko(고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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