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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로스의 추락, 누구의 책임인가

이카로스의 추락, 누구의 책임인가

이카로스가 추락하는 대목에서 흥미로운 또 하나의 사실은 점은 날개의 제작자이자 이카로스와 같이 첫 비행에 나선 사람이면서 이카로스의 아비이기도 하고, 그들 부자가 시험 비행도 마치지 않은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라 탈출을 감행해야만 하는, 극히 위험천만한 상황에 빠지게 만든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다이달로스에 대한 것이다. 

분명 다이달로스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외아들인 이카로스를 구했어야 하는 책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카로스가 추락하는 것에 있어 제 역할을 하지 않은 듯, 어쩌면 추락의 방관자인 듯, 막상 이카로스의 추락에 있어서만큼은 마치 그림자 인간이 되어 버린 듯하다는 것이다. 


“이카로스의 추락에 있어, 신의 자손이라 할 만큼 천재적인 장인이면서 또한 그의 아비인 다이달로스가 어째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걸까.”     


아테네에서 도망쳐서 크레타 섬으로 도피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다이달로스에게 책임이 있다. 

또한 크레타 섬을 통치하고 있었던 미노스 왕의 환대를 오랫동안 즐기며 살고 있다가 어찌어찌해서 아들 이카로스를 낳았고, 치정관계가 엮여있는 극히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왕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그 일로 인해 아들과 함께 미궁 라비린토스에 갇히게 된 것 또한 다이달로스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 


(미노스가 사람의 이름인지, 크레타 어에서 ‘왕’을 뜻하는 단어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만약 미노스가 왕을 뜻한다면 ‘미노스 왕’이라는 번역은 옳지 않은 것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글판 번역에서는 ‘미노스 왕’을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에 대한 판단은 읽는 이 각자가 해야 할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미궁이라는 라비린토스는 다이달로스 자신이 설계하고 만든 것이다. 

다이달로스는 비록 천재적인 기술을 가졌었지만 세상사에 있어서만큼은 판단이 미숙했거나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만심과 교만함이 그의 눈을 가렸었을 수 있다.     


아들에게 자신이 만든 날개를 이용한 비행의 위험성에 대한 주의를 주지시키려고 노력했다는 것에서 다이달로스는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사전에 예견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뿐인 아들이 자신이 주지시킨 주의사항에도 불구하고 태양 가까이로 날아오르는 위험천만한 짓을 저지르는 장면을 목격했을 다이달로스가, 그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 그가, 어째서 아들의 철없는 행동을 물리적으로 제지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또한 그보다 앞서 날개를 만드는 과정에서 사전에 예방할 수 방법을 강구해 두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서 시원한 대답을 찾을 수 없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가 태양 가까이로 날아오르는 무모한 짓을 감행하는 것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하였기에 그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금세 알아차렸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젊은 날에 저질렀던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들을 돌아다보면, 젊음이란 게 일탈을 감행하게 만드는 아슬아슬한 격발장치란 것 또한 명백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물가에서 놀고 있는 어린 사내자식을 지켜보는 심정으로 이카로스 바로 옆에서 비행하며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어야만 했다.      


“다이달로스는 그 어떤 변명으로도 이카로스의 추락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물이면서 또한 이카로스의 추락을 직접 목격한 유일한 이였을 것이다.” 

“이제 알 수 있게 된다. 이카로스의 추락을 목격한 [목격자]는 그날 섬에 어부와 목동, 농부가 아니라 다이달로스라는 것을.”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가 너무 높이 날아오르기 전에, 날개의 깃털이 타버려서, 또는 깃털을 붙인 밀랍이 녹아내려서 날개가 비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그래서 이카로스가 바다에 떨어져서 숨을 거두기 전에 어떻게든 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대체 왜 다이달로스는 자신의 아들 이카로스의 죽음을 지켜보기만 한 것일까. 그의 방임에는 어떤 다른 이유가 이었던 것일까. 


역사에서나 문학에서, 아들이 아비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경우와 그것과는 반대가 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혹시 그들 부자 사이에는 어떤 말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일까. 

그날의 사건을 옮겨 적은 오비디우스가 미처 살피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빼놓은 무언가가 그들 부자에게 있지는 않았을까.


신의 아들로 태어나 어느 인간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천재적인 재주를 지녔던 다이달로스를 생각해본다면, 그날 발생한 이카로스의 추락과 죽음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대해 늦은 오후의 그림자보다 더 길고 진한 의혹의 눈길을 다이달로스에게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 α ――――――     


이제 시선의 방향을 바꾸어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를 바라보자. 

다이달로스는 아직 하늘에서 그의 아들을 찾고 있을 수 있다. 

또한 이제야 이카로스를 찾아 이카리아의 앞바다로 내려오고 있는 중이라고 추측해 봐도 되겠다. 

‘왜 이제야’라든가 ‘아직도’라는 의문은 오직 인간에 대한 것이기에 신의 자손으로 태어나 신과 인간의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살아간, 어쩌면 현재도 살아가고 있을 다이달로스에게는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다이달로스에 대한 그러한 의문은 ‘가져볼 만은 하지만 그리 의미를 둘만하지 않은’것이라고 치부해도 괜찮겠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도의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결코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그것은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의 이야기를 문장으로 옮기면서 뭔가 빠진 듯 허술함이 느껴지도록 집필한 오비디우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오비디우스는 이 이야기를 읽게 되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게 되기를 바란 것일 수도 있다. 


“자연의 법칙과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도전은 무모한 것이며, 결코 성공할 수 없기에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한다.”


―――――― α ――――――     


하나의 상상은 또 다른 생각의 타래를 주렁주렁 달아내는 법이다. 

전통적 관점에서의 해설에 따르면 이카로스는 무모한 도전자이다. 

그것이 이카로스라는 젊은 등장인물이 이야기 속에서 맡은 역할이다. 

하늘은 곧 신이기도 하기에 하늘을 높이 날고자 하는 이카로스의 욕망은 신에 대한 있었을 수 없는 도전이라고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카로스의 날개 이야기>에 나오는 ‘비행을 통한 신에 대한 도전과 추락’이라는 전개는 <바벨탑 이야기>과 상당히 닿아 있다. 

바벨탑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탑을 쌓아 신에게 도전하고자 했던 인간과 그 행위에게 내려진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이카로스의 날개 이야기>와 유사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이카로스라는 다이달로스의 아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가져볼 수 있게 된다.

“이카로스는 과연 누구인가.”

“이카로스는 한낱 철부지일 뿐인가. 아니면 신의 권능에 대한 용감한 도전자이자 운명의 개척자인가.”

“이카로스는 우둔한 대중에게 ‘자연과 신에 대한 어리석은 도전’에 대한 교훈을 주기 위한 제물이었던 것일까.”

“이카로스는 인간의 진화를 위해,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되기 위해 신에게 받쳐진 제물인 것일까.”

“이카로스의 추락하게 된 것은 신의 심판 때문인 것일까.” 


이카로스를 제물로 본다면 그는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희생자’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것을 기획한 가해자인 걸까. 

이카로스를 추락하게 만든 것은 하늘이며 태양이기에 하늘과 태양을 가해자라고 지목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하늘과 태양이 가해자라면 하늘과 태양은 곧 신이기기도 하기에, 신과 인간의 관계를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이 아니면 미궁에 갇히게 되는 상황의 제공자였고 날개를 제작했던 아비 다이달로스가 이 사건의 가해자인 것일까. 

또는 아비와 아들을 미궁에 가둔 크레타의 미노스 왕에게 이카로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이 가해자가 아니라면 누군가를 희생시켜서라도 인간의 진화를 이끌어내려 한, 도전에는 희생이 따르게 된다는 교훈을 만들어 내려 한, 그렇지만 언젠가는 하늘을 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려한 우리라는 인간 무리가 ‘집단적인 가해자’인 것일까.     


태양은 오늘도 저쪽 지평선 너머로 유유히 내려 설 것이고 내일 아침이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또다시 이쪽 지평선 너머에서 떠오를 것이다. 

그의 아비 다이달로스와 미노스 왕은, 이카로스가 그랬던 것처럼 하늘에서 추락을 해서였건 또는 그냥 땅 위에 누워서이었건 아주 오래전에 이미 이 땅을 떠나갔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평행 우주라든가 다른 어딘가를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고 한들 인간이 살아가는 이 땅에 남아 회자되고 있는 것은 <이카로스의 날개 이야기>에 얽힌 흥미로운 전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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