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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 껍질의 비밀을 알아버린 밤의 정령

프란츠 교수의 철학적 에세이

글쟁이, 껍질의 비밀을 알아버린 밤의 정령                        

나를 에워 덮고 있는 껍질은 세상과 나 사이에 쳐져 있는 경계이긴 하지만 그것 너머로 고개를 내밀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기에 껍질이란 게 나를 가두려고 쌓아 올린 높은 담벼락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또한 아주 느리게라도 아무런 제약 없이, 나 스스로의 의지를 따라서 그 안의 세상을 돌아다닐 수도 있기에, 좁은 껍질 안을 자유롭게 유영하며 살아가는 삶이 넓은 세상에 갇혀 살아가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껍질이란, 대게의 경우, 스스로가 쌓아 올린 경계이긴 하지만 자신을 굳건하게 지켜주는 보호막이기도 하기에 껍질 안으로 찾아들어간 인간은 별다른 이유가 없는데도 평온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겁이 많고 나약한 존재이기에, 넓고 커다란 공간에서보다는 좁지만 자유로운 유영이 가능한 곳에서 더 큰 안락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극히 인간다운 것이기에 당연히 그래야하는 것이라고 믿으며 일상이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껍질은 그것이 아무리 빈약한 한 겹의 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견고한 성채이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미완성의 존재에게 껍질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하는 마지막 방어막이고, 삶을 지탱하는 주된 기둥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스스로의 변명이고, 또 다른 세상을 향해 자신을 재배치할 수 있도록 하는 필수적인 도구이자 수단인 것이다.  

  

―――――― α ――――――     


껍질은 때론 인간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껍질이 걸어가는 길에는 그것의 그림자가, 아직 퇴화하지 않은 꼬리처럼 길게 끌려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태양과 달의 인력에 따라 껍질 바깥의 형체와 껍질 안의 모습이 때를 맞춰 번갈아가며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하는 것이 그 그림자의 정체이긴 하지만 언제, 어느 것이 어떠한 형상으로 나타날지에 대해서는 어느 것 하나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따라서 그것이 나타나는 것은 태양과 달의 주기를 따르고 있지만 형상의 발현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것에는 신비로운 것, 형이상학적인 것, 불가해한 것, 마법 같은 것이란 별칭을 붙이고 있다.

     

해의 인력에 끌려 나온 껍질의 [낮 그림자]는 ‘나’라는 형상으로 세상에 나타난다.

하지만 달의 인력에 끌려 나온 [밤 그림자]는 아예 아무런 형체가 없거나, 종종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형상으로 나타나기에 분명 나이긴 하지만 나조차도 그것이 나인지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다.

그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굳이 추측이라도 내어놓으라면, 밤 그림자라는 것이 껍질을 닮기는 했지만, 껍질의 바깥쪽 형상을 닮는 것이 아니라 그 안쪽에 있는 무엇인가를 닮기 때문일 거라고, 조심스럽게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밤은 은밀한 공간에서 은밀한 시간으로 흘러가는 형상이다.

[밤]이 그러하고 [밤 그림자]가 또한 그러하듯이, 밤이면 나의 껍질은 하나의 형상을 갖추지 못하고 밤의 정령의 형태로 나 자신의 주변을 맴돌기도 한다.

그때마다 그것이 나인지, 내가 나인지를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은 밤이 부리는 마법에 걸렸기 때문이다.

밤의 마법은 검지만 누구도 그것을 흑마법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원래부터 밤은 검기 때문이다.     

     

인간은 껍질이자 정령인 그것을 한 번도 시각적으로 담아낸 적이 없기에 그것은 인간의 상상력 속에서조차 하나의 지정된 형상을 갖추질 못하고 있다.

그러니 ‘존재하는 것이긴 하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이라는 말장난과도 같은 모호한 문장이 그것을 꾸미게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인간의 삶 속에서는 자신의 형상을 갖추지 못하고 오직 [글쟁이의 글 속에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기에, 그것의 존재는 오직 [잘 단련된 글쟁이]들만이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어쩌면 그들은 지나온 삶 언젠가 지금과는 다른 이름이 붙어있었을 밤의 정령이었거나, 다가올 삶 언젠가 또 다른 이름이 붙여질 밤의 정령이 될 팔자를 타고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전생이란 것과 후생이란 것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그들이 타고난 팔자이기에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일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모서리의 선(線)을 잃은 껍질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무모함이거나 경계를 잊어버린 무모함이니, 글쟁이의 글에서나마 실체 하려는 밤 그림자의 욕구라는 것이 사실은, '삶에서 경계란 것을 지워버리려는 글쟁이'의 의도된 본능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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