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 할 수 없는 까마득한 옛적에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역하는, 신의 입장에서 보면 배은망덕한 데다가 발칙하기까지 한, 아주 불경스러운 사건을 저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이 걸어가야만 하는 길을 벗어나게 만든 것이다.
그것이 어떤 꾐에 빠진 것이건 스스로에 의한 것이건 일단 저질러진 일에는 그에 상응하는 판결이 따르는 법이다.
신의 심판은 아주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하긴 심판이란 게 오직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며 당시 인간이라곤 그들 두 사람 밖에 없었다고 하니 판결을 지체시킬 만한 요인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심판은 즉결로 내려졌고 그 결과는, 인간은 그때까지 ‘인간의 땅’이라고 굳게 믿으며 살고 있었던 공간에서의 영원히 추방되었다.
그들이 저지른 행위가 그리 중한 죄였는지,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추방이라는 강력한 판결이 내려진 것을 보면 그날의 판결은 ‘금지를 어긴 것’에 대해 내려진 일반적인 형벌이었다기보다는 ‘믿음에 대한 배신’에 대해 내려진 가중된 형벌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시(詩)를 통해 중세시대의 종교적 인문적 정신을 종합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Alighieri, Dante, c.1265-1321)가 쓴 신곡(神曲, the Divine Comedy)을 끝까지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말이 의미하는 바를 금세 알아차렸을 것이다.(단테의 신곡에 따르면 지옥의 가장 깊은 곳까지 떨어지는 형벌에 처해지는 죄가 바로 ‘배신’이다.)
인간에게 추방이라는 최고의 형벌이 내려진 것으로 봐서 아마도 세상을 창조한 신은, 자신의 형상을 닮게 만든 유일한 피조물인 인간이, 그들에게 주어진 금기사항들을 완벽하게 지킬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따라서 그날에 있었던 신의 노여움은, 비록 그것에 대한 신뢰할만한 기록이 남겨져 있지는 않지만, 믿음에 대한 배신감에서 치밀어 오른 것일 수도 있고, 배신을 당하게 될 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완벽해야만 하는 자신’에 대한 당혹스러움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태초의 땅에서 쫓겨난 후에도 탑을 높이 쌓아 다시 신의 분노를 사고야 말았던 선조들의 원죄는 지금도 우리의 혈관 속을 돌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원인을 따지고 보면 인간의 원죄는 ‘호기심’이라는, 인간에게 부여되어 있는 지적 자각 능력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호기심 또한 애초 신에 의해 인간에게 불어 넣어진 것이지만 이미 창조라는 행위가 마무리된 이상, 신으로서도 인간으로서도, 이제 와선 돌이킬 수 없는 노릇이다.
경전에는 돌이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기술되어 있는데 그것은 ‘심판’이다.
하지만 인간은 신의 심판조차 하나의 호기심거리로 전락시키고서는 잡아당기거나 뒤틀면서 온갖 변형을 그것에게 가하고 있다.
―――――― α ――――――
현명하게 생각할 줄 아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에게 있어 호기심이란 결코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능력이다.
인간에게 호기심은 스스로가 스스로의 진화를 이끌어가는 수단이기도 하다.
창조의 과정을 벗어난 인간은 호기심이란 장치를 통해 스스로를 진화시키고 있다.
스스로를 진화시키고 있는 인간에게 창조론만을 믿으라든지 진화론만을 믿어야만 한다는 식의 이분법적인 사고는 모순이며 억압일 수 있다.
호기심으로 인해 인간은 사물과 그것의 속성을 세밀하게 살피게 되고, 사색이라는 필터를 거쳐 그것들의 본질과 원리를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진화는 비단 생물학적인 진화만이 아니라 정신적 진화에도 있는 것이며, 그 두 가지의 진화가 조화롭게 이루어질 때 우리는 ‘인간이라는 위대한 존재로서의 진화’를 이루어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호기심으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는 때론 아주 매서울 수도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때에 일어나는 더 강한 호기심이 그것을 견디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인간은 매서운 것을 버티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불가해한 존재이다.
그래서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의 호기심은 결코 멈춰지지 않는 것이다.
어떤 호기심은 심판에 이르게 하지만 그 심판의 굴레를 벗어나게 해주는 장치 또한 호기심이다.
심판을 견디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디딘 발걸음이 새로운 진화의 경로를 새겨 넣는다.
그렇게 인간은 앞으로 나아가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진화해 가는 것이다.
지금의 길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자,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호기심을 억누르려 하는 자, 한 발짝 옆으로 내려서길 두려워하는 자는 결코 이런 진화의 여정을 제대로 따를 수 없게 된다.
진화하지 못하는 자의 영혼은 언젠가 영원히 소멸하게 될 것이기에 진화는 인간을 영생으로 이르게 하는 길인 것이다.
인간에게 진화란 자신의 굴레를 극복하고 주어진 여건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성되고 얻어지는 결과물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여건 중에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이, 자신의 가장 큰 굴레인 것이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의 진화를 추구하는 인간이 가장 인간다운,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인간인 것이다.
"인간의 신비로움은 불가해함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
“인간은 호기심에 의해 진화하게 되고, 그 진화의 여정을 인내로 걸으면서 인간은 내적으로 성숙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