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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하기와 사유하기

사색하기와 사유하기

사색이란 무엇이며 어떤 것을 사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사색한다는 것과 사유한다는 것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사색과 사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둘의 사전적인 의미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색(思索):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름.

*사유(思惟): 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행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     


이에 따르면 사유는 사색을 포함하는 보다 폭넓은 개념이며 사유의 일정 부분을 사색이라고 볼 수 있게 된다.

사색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 존재하는 또는 존재했던 시점을 중심으로 해서 그것이 무엇인지, 그 이치는 무엇인가에 대해 이성적으로 따져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며, 사유한다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해 그것 자체에서부터  그것의 개념, 그것과 연관된 다양한 부분들을 두루두루 따져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사색의 개념에서는 이성적인 것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과, 사유의 개념에서는 추상적인 것과 형이상학적인 것의 역할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해져 있다는 것이 또한 더듬어진다.

따라서 사색에 대해서는 감성이 끼어들 여지가 좁아 보이지만 사유에 대해서는 그 여지가 조금 더 넓어 보이게 된다.


결국 사유하는 인간이란,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영역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깊이 또한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지극히 지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지적유희란 무엇일까. 사색하는 인간이 지적유희의 인간인 것일까. 아니면 사유하는 인간이 지적유희의 인간인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사색하기’와 ‘사유하기’가 품고 있는 ‘생각하기’의 넓이와 깊이를 살펴봄으로써 그 답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는 대개의 경우 인간의 지적유희는 사유하기보다는 사색하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지적인 인간일수록 자신의 생각이 이성적이길 바라게 된다.

인간은 이성적이지 못한 개인적인 망상을 사유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곤 하는 존재이다.

지적이지 못한 인간, 이성적 체계를 갖추지 못한 인간, 생각하기에 능하지 않은 인간이 말하는 사유하기는 대개의 경우, 그들의 짧고 헛된 생각을 포장하는 언어적 도구로 전락되기 십상이다.

사유하기에 있어 가장 크게 경계해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사색하기를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지적인 행위로 여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지혜로운 인간이란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생각하기에 능한 인간’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인간인 것이다.

현 인류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다른 어떤 인류들보다 더 제대로 생각하는 능력, 사유하는 능력, 그래서 자기 자신과 사회, 자연과 세상만물을 좀 더 섬세하게 살필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유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 사유할 줄 아는 인간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인간,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인 것이다.      


고전주의 시기(Classical period), 아테네(Athens)에서 활동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 Plato(/ˈpleɪtoʊ/ PLAY-toe;[1] Greek: Πλάτων Plátōn; 428/427 or 424/423 – 348 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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