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정치적’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이후 사회적인 현상들이 반영되면서 “인간은 폴리스적인 존재이다.” 또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문장의 씨앗이 되었다. 또한 발아 과정을 거친 그 씨앗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가.” 등과 같은 ‘인간의 본질’에 관련된 질문에 있어 인간의 속성과 인간 자체를 표현하는 일종의 정리(Theorem)이자 공리(Axion)이면서, 명제(Proposition, Thesis)이자 부명제(Lemma)로써 여겨지게 되었다.
형이상학적으로 또는 형이하학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하나의 원 개체(Origin-Entity)는 그 하부에 있는 다수의 하부 개체(Sub-Entity)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하부 개체는 그것을 보조하는 다양한 속성들(Attributes)을 통해 자기 식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하부 개체의 속성이 곧 원 개체의 속성인 것이며, 하부 개체의 정체성이 바로 원 개체의 정체성인 것이다. 이때 속성은 그 하부 개체의 성질을 생성하고 있는, 그래서 그 하부 개체가 바로 그것으로 존재케 하는 말단(leaf)의 구성 요소이자 값이다.
결국 존재에 대한 탐구는 그 원 개체를 구성하고 있는 하부 개체들 각각에 대한 탐구의 집합물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구성하는 속성들을 발견하고 규명함으로써 원 개체로 점차 다가설 수 있게 된다. 각각의 하부 개체는 자신의 고유한 속성을 가지게 될 때 비로소 실재하는 것이 되고, 하부 개체의 실재를 통해서 원 개체 또한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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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폴리스는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시스템이기에 폴리스 또한 인간이란 원 개체가 가질 수 있는 하나의 하부 개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입장을 바꾸어 폴리스의 관점에서는 인간 또한 폴리스라는 원 개체를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하부 개체들 중에 하나가 된다. 결국 폴리스와 인간 사이에는, 폴리스가 하나의 하부 개체이면서 또한 원 개체인 것처럼 인간 또한 하나의 원 개체이자 하부 개체이기도 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폴리스와 인간의 관계는 어느 것이 어느 것의 위 또는 아래에 놓여 있는 수직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또한 그것’인 수평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젠가부터 인간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쳐 놓은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폴리스적인 것’이라고 여기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또한 “인간은 폴리스적으로 살아야만 한다.”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래야만 한다고 확신하기에 폴리스적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지금의 우리는 ‘폴리스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혹시 그것에 대해, 지나간 시간을 살아갔던 인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폴리스적인 삶이란 어떤 것이며, 어떤 시선으로 그것을 들여다봐야 하는 것일까.
마을이자 도시이면서 또한 국가이기도 했던 폴리스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공공의 규범이 개개인의 삶보다 앞서는 것이, 서로가 서로의 시선을 의식하면 살아가는 것이, 그런 폴리스적인 삶이 과연 인간의 존재를, 인간이라는 원 개체를 가장 인간다울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아가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그러했다면 지금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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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로 눈을 돌려 보면 커뮤니티(Community)라는 사회적 개념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아가던 시대의 폴리스에 해당한다고 여겨볼 수 있다. 지금의 커뮤니티에는 혈연을 바탕으로 하는 가족이란 가장 작은 커뮤니티에서부터, 살아가고 있는 장소를 단위로 하는 지역적인 커뮤니티와, 특정한 성격을 매개체로 하는 사회적인 커뮤니티,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종교적인 커뮤니티, 그리고 국가라는 정치적인 커뮤니티가 있다.
이러한 커뮤니티 각각은 그들 나름대로의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것이 미시적이건 거시적이건 간에 관리시스템 또는 행정시스템, 또는 정치 시스템이라 부를 수 있는 시스템에 의해 조직화되어서 관리 및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간이 폴리스적이라는 규정을 현재의 명제로 받아들인다면 ‘인간은 커뮤니티에 속해야만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 것이고 따라서 ‘인간의 삶은 반드시 커뮤니티에 연관되기 마련’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지금의 커뮤니티는 고대의 폴리스가 그러했을 것처럼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론 불행하게도 만들 수 있는, 거부할 수 없는 사회적인 시스템이면서 또한 정치적인 시스템인 것이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주변을 살펴본다. 존재한다는 것은 단지 그곳에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곳에 속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실질적인 개념이기에 크든 작든, 중요하건 그렇지 않건, 지금 내가 속해 있는 커뮤니티들은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현실적인 수단인 것이다.
결국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커뮤니티는 인간의 존재를 증거하고 있는 핵심 속성(key attribute)이며 그 자체로서 다양한 속성을 지닌 하나의 개체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커뮤니티에 대한 탐구를 통해 '인간은 폴리스적인 존재'라는 말을 지금의 시대로 끌어내어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좀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커뮤니티를 살아가고 있는 정치적인 존재이다."
이제 지금의 인간은 또 다른 블랙홀에 빠지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폴리스가 이데아였다면, 지금의 커뮤니티 또한 이데아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