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일석 /Rev_12212023
마주 세운 두 장의 거울 사이에 선다
겹겹의 공간에 내리는 눈은
뫼비우스의 띠 같은 시간 속에 갇혀
마치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심연으로 향하고 있다
거울 속으로 이어진 길에 발을 딛는다
끝이라든지 시작이라든지 하는
잊어버렸던 시간의 잔재가
나를 닮은 바람으로 몰아치다가
은빛 바닥 위에 날카롭게 박힌다
얼어붙은 노면보다 더 찬 가슴으로
깊은 숨을 들이켜자
불현듯 겨울의 꿈에서 깨어난다
너무 길었던 잠에
시간의 흐름을 잃어버렸나 보다
잔 물방울 맺힌 창에 선다
소매 끝으로 둥글게 문지르자
세상을 떠돌던 뭉게구름 덩어리가
앙상한 나뭇가지에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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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찾아오는 긴 뒤척임이 겨울의 꿈 때문일까.
겨울이면 더욱 선명한 반짝임에 갇힌다.
꿈보다 더 긴 길을 걸어가라는 전언인가 보다.
물을 끓여 속 뽀얀 넓은 잔을 가득 채우고
향 좋은 그린 티 한 팩을 떨어뜨려 창가에 선다.
넓은 창으로 스며든 겨울의 환영이 얼굴을 시리게 한다.
나무 가지에 걸터앉은 겨울이 시간을 말리고 있다.
냉랭한 꿈에 갇힌 겨울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려요, 아직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겨울은 영원을 향해 있는 시간의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