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물리적인 현상들과 이것들에 연관된 것들을 밑바탕 삼아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세상이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스스로를 가둘 수도 있고, 그런 행위를 허락하지 않을 수도 있는 영험한 존재이다. 따라서 스스로에 의하지 않는다면 인간을 온전히 가둘 수 있는 정신적인 미궁이란 것은, 원칙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종종 “나, 미로에 빠진 것 같아.”라든가 그와 비슷한 말을 주문처럼 주절거리게 되고, 때로는 그 말을 되뇌면서 스스로를 미로 속에 가두어 버리고야 마는 비이성적인 일을 큰 생각 없이 벌리기도 하는 특이한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스스로에 의해 또는 누군가에 의해, 때에 따라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쩌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은 전설의 미궁 라비린토스에 던져진 것 같이 먹먹하고 이물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때를 살아가는 동안, 자주는 아니라도 해도 드물지도 않게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 미궁이 신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든 그렇지 않고 현실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이든, 그것이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든 또는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든, 인간은 미지의 미궁에 갇히게 되고 그것에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으로 이카로스가 어깻죽지에 붙였다는 날개를 찾게 되는, 비이성적인 존재로의 변신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이 어쩌다가 일어난 일이거나, 비록 잠시 잠깐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현명한 눈을 갖게 된다면, 자신이 갇히게 될 미궁이 존재를 제대로 인지할 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그것으로의 들어섬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너무 깊숙이 걸어 들어선 후에야, 수많은 방황과 처절한 좌절 속에서 그 속을 헤매고 난 후에야 자신을 에워싼 것이 미궁이란 것을 알아차리게 되지만, 그때조차도 애써 그것의 실체를 부인하려 드는 것이 연약한 인간의 초상(肖像)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가장 인간다운 일이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스스로가 정신적인 미궁 속으로 걸어서 들어가고, 그것을 인지하는 것조차도 늘 때 늦어지는 것이 현실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나약한 우리의 '인간다운 모습'일뿐이다. 그러면서도 희망이라 부르는 것에게 닿은 가느다란 끈의 끝자락이나마 놓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것이 또한 나와 우리의 초상인 것이다.
시인 이상의 <날개>에서처럼 날개가 솟아나 높이 훨훨 날아 작금의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꼭 그럴 수 있을 것 같고 반드시 그러하여야만 하는' 자유의지가 두서없이 벌리고 있는 미처 승인받지 못한 현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