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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都市 이야기

도시都市 이야기


내가 살아간 그곳은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긴 했지만 또한 나의 가장 먼 적이기도 했다. 그곳은 어린 시절과 젊은 날의 곤궁과 비참함, 웅크림과 늘어짐, 몸부림과 버둥거림을 잉태했던 커다란 자궁이었으며 좌절과 체념의 질퍽한 바닥끝으로 영혼까지 기어이 끌어내렸던 검고도 깊은 늪웅덩이였다.     


가끔은 용기를 내어 몸과 영혼을 비틀어 본 적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더 강한 구속력이 나를 속박할 뿐이었다. 어쩌다 더 큰 용기를 내어 나선 길에서조차 허무함과 무기력에 빠져버린 배고픈 어느 늦은 저녁시간처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리기 일쑤였다. 

 

그곳은 또한 인간과 하늘의 담장이자 발칙하고도 기괴한 상상이 시작되면서 또한 그 끝에 다다르고 있는 이성의 울타리를 넘어선 곳이었기에 그 시절의 나는 한 발짝도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부지런히 팔을 젓는다 해도 그곳을 맴돌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은 그곳을 살아가야만 하는 이에게 주어진 천형과도 같은 것이라고 여겨야만 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불행한 방황이 스스로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어져 나가고 있었다. 아주 가끔이라서 기억조차 희미하긴 하지만, 애써 기억을 뒤적거려야만 그것의 흔적이라도 더듬을 수 있긴 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고 하기는 어려울 수 있었다. 


어린 시절에 "애 늙은이 같다."라는 비문자적인 꼬리표를 달았던 이에게는 어린 시절과 젊은 날이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뭉개어진 한 덩이 시간일 뿐이고, 다른 발성을 통해 입 밖으로 표출되긴 하지만 같은 뜻을 품고 있는 이음동의어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어린 시절과 젊은 날에 있었던 그곳에서의 방황을 기억하고 있는 이라면, 그래서 방황이란 것의 의미를 눈과 머리와, 심장과 영혼으로 흡수하게 된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라면, 방황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서 진실이라든가 현명함 같은 것을 찾으려는 어리석은 짓 따위는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익히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들 자체를 전혀 믿지 않기에 그들이 입과 글로 쏟아 낸 언어 또한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는 당연한 일일 뿐이었다. 그것들은 공단의 굴뚝이 때마다 그러는 것처럼, 젊은 사내의 그곳이 새벽녘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처럼, 허공을 향해 배설해내고 있는 의미 없는 욕망의 찌꺼기일 뿐이며 금세 휘발되고야 마는 지난밤 꿈의 부스러기와도 같은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실체는 영혼이 없는 것에게는 스며들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영혼을 가진 나는 오늘도 그곳이라 부르는 이곳을 살아가고 있다. 그곳이면서도 이곳이기도 한 여기가 직선과 직선의 스카이라인을 풍경 삼아 내가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가게 될 인간과 인간의 공간, 무생물과 무생물의 공간, 아스팔트에 덮인 하천을 타고 검회색의 시간이 흐르는 공간, 콘크리트와 콘크리트 사이로 음산한 바람이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공간, 지나간 것과 지금의 것과 지나가게 될 것을 구분하기 어려운 공간, 과거 같은 현재와 과거 같은 미래가 엉켜 뒹구는 공간,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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