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서른의 회상 -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서른의 회상 

    -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서른, 아스라하게 떠나 버린 그때 즈음에 

난 무얼 하고 있었을까.     


외떨어진 저 편 구석으로 밀려나 

기억을 더듬는 것조차 가마득해진 

어두운 진갈색의 헛간에서, 


엉성한 시간의 때 자욱 가득 끼이고

검게 그을린 뿌연 먼지 자국이 

겹을 셀 수 없을 만큼 켜켜이 얹혀 누르는 

검청의 덩어리들이, 


끈적한 곰팡내 쿰쿰하게 풍기며 

망각의 문에 가려있던 시간 속에서 

몇 걸음 옆으로 문득 돌아 나와 


현실이란 초가집의 삐걱 이는 문턱에 서서 

등 뒤 늘어진 초저녁 긴 햇살에 

부쩍 커진 그림자의 희미한 실루엣으로 

형체 분명치 않게 쑤욱 다가섰던     

서른 그때 즈음,     


스물 젊음의 끝자락을 놓아버려야만 했던

한 사내의 어리석은 성급함은 

허술한 자신의 비이성을 

단단하고 빈틈없는 이성이라 우겼었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주관의 

방향 없이 허술하기만 한 난반사를

윤기 흐르고 잘 정제된 객관의 

화려한 빛과 흐름이라고

확신처럼 세뇌하며 혼자 믿었지나 않았는지,     


하루라는 시간의 짧은 흐름이

행여 젊음의 호흡을 줄여버릴까 봐

발걸음 돌리기 싫은 여정의 

어두워 가는 끝자락에 서서

눈빛 아직 맑지만 갈 곳 없는 지친 나그네와 같이 

발길 조바심에 어쩔 줄 몰라하지나 않았는지,     


흐르는 밤의 시간을 채우는 문장과 

밀폐된 공간을 진동하는 음악의 최면과

비어 가는 심장의 역설적인 뜨거움이

냉랭한 감상의 글귀를 

저녁 이슬에 식어버린 돌담처럼 

두서없이 채워 올리려 하지나 않았는지,     


아직 제대로 깨어나지 못한 가슴에

파란 하늘의 빈 공간을 가늘게나마 담았고

가득 낀 구름이 비를 내리는 날

우산 없는 맨몸으로 질퍽한 길 위를 뒹굴지 않았는지,

      

바람 세찬 들판에 홀로 서서는 

두 팔 커다랗게 펼치고 

두 눈 질끈 감은 채로 고개 잔뜩 뒤로 젖혀

얇지만 질긴 젊음의 막으로 견뎌낸,

돌아보면 길었던 하루나기 같았던

서른의 정거장에 더디게 돌아온 오늘,

문뜩 시간의 파편 하나가 차창을 스쳐간다     

-------

출렁인다. 빛의 반사인가, 잔 진동인가, 이 흔들림이란 게.

하루 빛 뿌연 맑은 날, 해거름 해져 가는 먼 서녘 끝, 서른의 시간이 손 흔든다. 

그 시간 속에 영원히 갇힌 한 사내는 지금 웃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희미한 얼굴 윤곽엔 잔주름 가득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jppOzsPUi3k

매거진의 이전글 신청곡, 스물의 그 노래 <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