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어느 문화권을 막론하고 남자와 여자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이며, 아주 강한 중독성을 가진 카타르시스적인 이야기이다. 사랑이야기는, 저잣거리 어디에나 질펀하게 늘려 있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중에서도 이루지 못한 가슴 아픈 어떤 류의 사랑이야기는, 구구절절한 사연을 거기에 붙여가며 입에 담을 수 있어, ‘통속적인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 일 수 있다는 진리를 일깨워주는 원초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양문화권에 알려져 있는 가장 유명한 사랑이야기로는 이탈리아의 대문호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의 ‘베아트리체(Beatrice, 1266-1290)를 향한 짝사랑’ 이야기를 꼽을 수 있다. 대부분의 문헌들에서는 이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이야기‘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 내용은 단테의 베아트리체를 향한 일방적인 짝사랑이 주제이기에 '누구와 누구의 사랑이야기‘라는 상호작용적인 언어적 공식에 담아내기에는 적절치 않다.
또한 <로미오와 줄리엣>이 <단테와 베아트리체> 보다 더 유명한 사랑이야기라고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단테와 베아트리체>는 실존했던 두 사람을 주인공 삼은 이야기이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소설 속의 두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들 두 이야기 사이에는 결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단테와 베아트리체>를 비교하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무지를 들어 내게 되는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현실에서 있었던 어떤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설 속의 두 주인공이 ‘진정으로 실존’ 하지 않았다는 것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게 된다. 실존했던 것이 만들어진 허구의 것보다 더욱 가슴에 와닿는 것은 굳이 두말을 해야 할 필요 없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대단한 문학애호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학창 시절 책 좀 읽었다는 남자라면 ‘나의 베아트리체’라는 문구에 익숙해져 있기 마련이다. 그들이 말하는 ‘나의 베아트리체’는 곧 '나의 가슴을 들끓게 하는 여자'를 의미한다. 그들은 아마도 지금껏 여러 여자들의 귓불에다가 '나의 베아트리체'라는 아름다운 문구를 감미롭게 불어넣었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베아트리체’라는 단어는 남자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애칭 할 때 사용되고 있는 사랑스러운 고유명사가 되어 있다. 그렇게 되는 것이 베아트리체라는 단어의 숙명이었다고 믿어도 좋겠다.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짝사랑이 13세기에 있었던 애정행각이란 점을 헤아려보면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단테와 베아트리체를 떠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은, 무려 8세기 전에 살았던 그들 두 사람의 이름이 여전히 사람들의 입과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연인들의 가슴에 사무치게 스며드는 것은, 그 주제가 바로 ‘사랑이야기’이며, 사랑은 이성적인 것이 아니라 감성적인 것이며, 아무리 아픈 사랑이라고 해도 어떤 사랑은, 평생을 바쳐서라도 간직하고 싶고 꼭 그래야만 할 ‘너무나도 감미로운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