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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와 베아트리체의 만남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만남


어떤 이들은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만남이 두 번이었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세 번이었다고도 말하고 있다. 그들의 만남에 나타나고 있는 숫자 2와 3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랑은 결코 숫자를 통해 정형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에 빠져버린 이에게 숫자는 단지 기호적인 표기에 불과할 것이다. 일평생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에 눈이 먼 채로 살아간 단테에게, 베아트리체와의 만남을 숫자로 옭아매는 것은 한낱 부질없는 짓에 불과하지 않을까. 어떤 사랑은, 단 한 번의 만남이 영겁 동안 지속되는 조우와도 같은 것일 수 있으며 베아트리체와 단테의 만남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고 할 수 있다. 


단테의 짝사랑이야기와 그 사랑이 탄생시킨 위대한 작품 <신곡>이 밤하늘의 별들만큼이나 무수한 입과 입에, 문학작품들에, 연애편지들에, 사랑노래들에, 예술작품들에 새겨졌다는 것만으로도 ‘단테 식의 사랑의 위대성’에 대한 찬사를 아낄 수 없게 만든다. <신곡>이 위대하다는 것은,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탄생한 문학작품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테 식의 사랑’이 문학적으로 승화되었기 때문이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난 것은 1274년 봄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참석하게 된 피렌체의 한 파티에서 아홉 살의 단테는 자신보다 6개월 어린 베아트리체를 보게 되었다. 이날에 있었던 일을 상황적으로 보게 되면 “만났다.”라고 하기보다는 “바라볼 수 있었다.”라고 하는 편이 적절할 수 있다. 이날의 일에 대해, 대부분의 문헌에서 사용하고 있는 ‘만남’이라는 단어는 ‘소극적인 수준의 만남’ 정도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 단테에 따르면 이날 자신은 9년 9개월이었고 베아트리체는 9년 3개월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참고로 브리태니커에 따르면 단테(Dante)가 출생한 것은 1265년 5월 21일에서 6월 20일 사이로 보고 있다.(born c. May 21–June 20, 1265, Florence [Italy])—died September 13/14, 1321, Ravenna) */     


단테의 생애를 다른 대부분의 문헌들은 베아트리체를 ‘아름다운 여인’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는 ‘나의 베아트리체’는 '영원히 아름다운 여인'으로 기억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불과 9살이었던 소녀에게 ‘아름다운’이라는 꾸밈어를 붙이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된 해석이 필요하다. 아무리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환경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9살 소녀 베아트리체에게 ‘아름다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아주 적절한’ 행위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예쁜’ 또는 '어여쁜' 정도의 단어로 이날의 베아트리체를 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날 아홉 살 소녀 베아트리체와의 만남은 아홉 살 소년 단테의 영혼에 풋풋하지만 골 깊은 진동을 일으켰다. 이때 일었던 끌림은 단테가 성장함에 따라 사랑이란 감정으로 발전하였고 결국 단테는 일생동안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9살 소년이 9살 소녀에게 첫눈에 완전히 반한 것이다.  


단테가 스물아홉에 출간한 시집 <신생>(新生, 새로운 인생(The New Life), La Vita Nuova(이탈리아어), Vita Nova(라틴어), 집필 1292-1293, 출간 1292-1294 또는 1294)에서 말한 것처럼 어쩌면 단테가 베아트리체에게 첫눈에 반한 것은 숙명적인 일이었을 수 있다.


사랑은, 스스로를 끝없이 무너뜨리고 그 거칠고 척박한 폐허 위에, 이전까지는 나였으며 지금도 나인 것이 분명하지만, 나라고 알려져 있는 내가 아닌 새로운 나를 쌓아 올리는 파괴와 창조의 행위를 반복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사랑의 울타리에 스스로를 가둔 단테는, 스스로를 부수고 쌓아 올리는 일을 평생 동안 기꺼이 반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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