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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야기, 뉴욕을 읽다

뉴욕이야기, 뉴욕을 읽다

      


아직 이방 여행자의 신분이었던 여러 해 전, 처음으로 뉴욕에 들렀을 때 생각했었다. 이곳에서 살게 된다면 행여 꿈 없는 잠에 빠져들 일은 없을 거라고. 호기심 때문이었거나 동경 때문이었겠지만, 이곳 뉴욕에서라면 낮의 태양 아래에서만이 아니라 밤의 어둠 속에서도 결코 살아가는 본능을 잃지 않을 것만 같았다.


열림과 닫힘, 유연함과 고집스러움, 매끈함과 거침, 화려함과 낡음, 날쌤과 느림, 초록의 나무와 잿빛의 콘크리트, 모서리 없는 하늘과 날카로운 스카이라인, 사람의 얘기 소리와 자동차의 소음, 관광객의 두리번거림과 뉴요커의 종종거림, 가지지 못한 자의 빈곤과 너무 많이 가진 자의 풍요로움, 세상 가장 낮은 것에서부터 가장 높은 것까지, 눈길을 잡아채는 하나하나의 모든 것이, 뉴욕이라는 매트로 시티에 끼워진 퍼즐 조각임을 알게 되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유럽을 돌아다니는 것과 맨해튼을 돌아다니는 것에는 두 대륙을 갈라놓은 대서양만큼이나 커다란 다름이 존재한다. 오래된 성전의 이끼 낀 돌담을 지나 지붕 낮은 집들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돌아다녀 본 이라면 자칫 뉴욕을 한낱 거대한 콘크리트의 사막으로만 여길 수도 있게 된다.


뉴욕은 역사가 짧고 제각각의 언어와 문화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엉켜 살아가는 곳이기에 유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뉴욕을 알고 싶다면 왜 그러한지에 대해 애써 이성의 이해를 구하려 하지 말고 보는 것 그대로를, 듣는 것 그대로를 그냥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미국이란 커다란 땅덩어리의 동쪽 바다 귀퉁이에 삐죽하게 붙어 있는 작은 섬 하나가, 세상의 중심 맨해튼이다. 이곳을 느끼는 방법 중에 하나는, 길거리의 델리 아무 곳이나 들어가 다크 로스팅 된 커피 원두에서 뽑아낸 미국식 진한 커피를 종이컵에 가득 채워 들고 발바닥이 아플 때까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온기 빠진 커피를 내려놓을 무렵이면 그 ‘악명 높다는’ 뉴욕 지하철에 몸을 실어 보는 것도 괜찮다. 자동차가 아니고서는 간단한 움직임조차 힘든 것이 미국이란 나라이기에 이 나라를 살아가다 보면 이동이라는 개념이 단조로워지게 된다. 하지만 맨해튼에서만 그렇지 않다. 두 발로 걷거나 지하철을 이용한다면 맨해튼의 북쪽 꼭대기에서 남쪽 끝까지, 서쪽 모퉁이에서 동쪽 모퉁이까지 어디든 가지 못할 곳이라곤 없다.   

  

뉴욕은 음악과 미술, 문화와 삶이 자본주의의 거대한 틀 안에서 잡초처럼 질기게 싹을 피워 꽃을 피우고 성장해 가는 곳이다. 무언가에 대해 ‘질기다’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은, 그것이 질겨야만 하는 특별한 사연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낡은 철제 난간에서 터져 나는 검붉은 녹 덩이와, 거친 보도블록에 덕지덕지 눌어붙은 뉴요커의 찌꺼기에서, 콘크리트 바닥에 퍼질러 앉아 불쑥 손 벌리는 홈리스의 꼬질꼬질함과, 빌딩 숲에 부딪혀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날 선 바람에서, 도시의 소음과 뒤엉킨 푸념 어린 삶의 이야기가 구구절절 배어나는 곳이 이곳 뉴욕이다.


손바닥을 휘휘 저으며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간혹은 손가락 끝에 맺히는 물기를 느끼게 될 때도 있다. 그때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양성’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아주 작은 입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때면 사람의 다양함과 문화의 다양함, 표정의 다양함과 삶의 다양함이 뉴욕이라는 큰 숲을 덮고 있는 키 작은 나무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뉴욕에서 살아보니 보니 알 것 같다. 잠들지 않은 시간만큼 시간을 지워 버릴 수 있는 곳이 뉴욕이란 것을. 이곳애서 여러 해를 더 살아 보니 알게 된다. 뉴욕은 잠들지 않는 도시가 아니라 잠이 들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도시라는 것을. 뉴욕은, 핸드폰에 담아 온 작은 컷 하나가 어느 날 글자 뭉치 주렁주렁한 나무로 자라나는 몽환의 도시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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