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끔, 아주 가끔씩 말야,
그 가끔이란 게
지나고 나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가물거릴 만큼 그런 가끔,
늘 그곳에 있어왔지만
설핏 눈길조차 받지 못하던 그것이
손에 익은 듯 느껴질 때가 있어
그럴 때면 난
풍경화 속을 걷고 있는
그를 발견하게 돼
2.
이젠 알 수 있어
그 풍경은 그냥 일상이었다는 걸
그 속에서 난
혀 끝에서 맴도는 와인의 달콤함에 빠져
토스카나의 구릉을 마냥 돌아다녔던 거야
그 풍경화 속의 그는
바로 지금의 나였던 거야
가끔은 말이야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커다란 이물감을 느끼게 돼
시간의 흐름은
막연한 것과 먹먹한 것이
결국에는 같은 것임을 알게 만들었어
3.
시간의 도움을 받았지
시간은, 그게 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해 줬지
오직 시간만이 그럴 수 있거든
풍경화 한쪽에 그려져 있는 그와
지금의 나는
그냥 풍경일 뿐이야
어느 날 문득,
풍경화 속의 내가
다른 풍경화 속의 나를 보고 있다는 걸
그냥 알게 됐어
그 풍경화에 그를 그려 넣은 것은
바로 지금의 나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