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는 호모사피엔스의 삶에 있어 가장 큰 질문이다.
이 질문은 철학적인 관점에서의 호모사피엔스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성적인 사고 능력을 가진 인간'으로 보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이기적이든 그렇지 않든 자기 자신을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이 있기 때문에 세상이 있는 것이고 자신이 없다면 세상 또한 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존재에 대한 의구심은 세상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인식체계를 흔들어 놓는다.
문제는 호모사피엔스는 태초부터 존재의 불확실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더 큰 문제는 그 인지의 정도가 명확한 것이 아니라 어렴풋하다는 것이다.
어렴풋하다는 것은 결국에는 불확실한 것이기에 어렴풋한 인지는 존재의 불확실성에 불안감마저 더해 넣게 된다.
따라서 호모사피엔스에게 있어 ‘자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는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노력이며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천형이라고 할 수 있다.
“실체를 갖지 않고서는 있을 장소도 시간도, 세계도 없게 된다. 따라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실체를 가져야만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실체’란 ‘공간과 시간을 점유한 신체’를 말한다.
하지만 ‘나의 존재’에 대해 보다 이성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나의 존재는 실체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 세상에 머물고 있음이 된다.
이 말은 "그곳에 있느냐 아니냐." 하는 형체적 점거를 넘어 정신적 점거를 통해 존재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모사피엔스로서의 나는 실체적 장소나 형체적 신체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신체나 공간의 점유가 없어도 이성적인 생각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점유보다 이성적인 생각이 우선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존재케 할 수 있다."라고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한 발짝 더 나아가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나는 이곳에 있다. 또한 나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이곳에 속하고 있다.”
이 말은 이곳에 있으면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는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결론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기에 모든 명제의 기초를 ‘생각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한 데카르트의 철학적 결론과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인간만이 인간에게 내려진 천형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며 이것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를 존재하게 만들 수 있다.”
인간에게 내려진 천형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것이다.
천형을 짊어지며 살아간다는 것은 뭔가 큰 죄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할 수 없는 아주 오래전 언젠가 우리의 조상 중에 누군가가 결코 씻을 수 없을 만큼 중한 죄를 저질렀으며 우리는 그 조상의 후손으로 태어남으로써 그의 죄를 상속받게 된 것이다.
연좌제로 인한 죄가 우리의 원죄이며 이에 대한 형벌이 우리의 천형이 된 것이다.
연좌제는 현대 법률에서는 금지하고 있는 형벌이지만 인간의 창조주에게는 해당하지 않나 보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분명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을 상대해서 자신의 결벽을 주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호모사피엔스이자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것은 사유하라는 것이며 또한 이성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성적인 사유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탐구로 생각의 오솔길을 헤매다가 결국에는 신에 대한 탐구에서 그 정수리에 다다르게 된다.
이성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 주는 인간의 본질적 특성이다.
또한 이성은 ‘진위(眞僞), 선악(善惡)을 식별하여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이며 ‘절대자를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절대자란 절대권능을 지닌 신이다.
이성에 대한 이와 같은 사전적 의미를 통해 “인간은 신을 인식하기에 다른 동물과 구별된다.”라는 또 다른 정의를 유추해 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호모사피엔스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존재이며 이성이란 절대자인 신을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에서 신성을 탐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아테네 학당>(The School of Athens, Scuola di Atene)은 르네상스시대의 이탈리아 화가 라파엘로(Raphael, 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 – 1520)의 프레스코(fresco)화로 1509 - 1511년에 바티칸(Vatican City)의 사도 궁전(Apostolic Palace) 내부의 방들 가운데 교황의 개인 서재인 서명의 방(The Stanza della Segnatura)에 교황 율리오 2세(Pope Julius II)를 위해 제작되었다.